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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Sep 19. 2024

우리의 둥지를 트게 된 순간

임신, 어떻게 생각해?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을 해 볼 기회가 많다. 나는 원래 아기는 낳아도 되고 안 낳아도 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오빠도 아기를 각별히 원한다거나 자녀가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는 둥 고리타분한 소릴 하는 남자도 아니었다. 실제로 오빠는 내가 임신,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데미지나 영향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낳지 않아도 괜찮다, 만약 직접 낳기는 싫고 아이를 기르고 싶다면 입양을 고려해 보자, 입양을 하더라도 잘 키울 자신이 있다 등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작년부터) 아기들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면 기분이 좋고 우리의 2세를 상상하게 된다. 나와 오빠를 닮은 아이라니, 상상만 해도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이런 걸 보면 본능적으로 어미의 습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런 종족 번식의 욕구인지,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하지만 (아직 젊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욕구가 크진 않아서, 불임과 같이 낳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상처받진 않을 것 같다. 오빠도 2세를 재촉하지 않으므로 부담이 없다.

아무튼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우세한 지금이다. 그래서 결혼을 고민하면서도 그랬듯, 나는 임신 출산을 준비하기에 앞서 내게 나타날 변화와 임신 자체로서의 단점을 면밀히 따져보고 싶다. 이는 임신을 원치 않아서라기보다 오히려 임산부와 엄마 역할에 대한 성공적인 적응을 위해서다.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려면 그에 맞는 심신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개인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내내 맴돌기에, 적극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임신의 장점은 (벅찬 행복이나 가족의 결속력 강화랄지) 미디어나 주변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 임신의 부정적인 면들을 생각해 보고 싶다. 생각 없이 낳고, 대비 없이 후회하는 건 정말이지 싫다.

우선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해 나타나거나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신체적

: 기미, 잡티, 쥐젖, 튼살, 색소 침착, 뱃살/가슴 처짐, 산후풍, 제왕절개 흉터(약 12cm?)/자연분만 회음절개 상처 및 회복, 제왕절개로 인한 유착, 통증/진통, 치질, 요실금, 수면장애, 변비, 빈뇨, 호흡곤란, 요통, 디스크, 역류성 식도염, 피로, 졸음, 탈모, 관절통, 임신성 소양증, 과다출혈, 입덧/먹덧, 구토, 오로, 젖몸살

+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등 임신 합병증

++ 제왕절개 중 산모 사망, 자연분만 중 과다출혈/색전으로 인한 산모 사망

>> 내가 할 수 있는 것: 건강관리(식단 관리 및 운동-나름 열심히 하고 있음 / 아마도 디스크 호전 중), 돈 모으기(레이저, 마사지, 치료, 산후 PT, 임산부 베개, 임산부 방석 등), 근처 산부인과 고르기(1순위 대충 정함)

2. 정신적

: 자존감 저하, 두려움, 공포, 부담감, 불안(안전, 학교폭력, 범죄 등), 부모로서의 무게감, 본보기가 되어야 함, 임신/출산/육아 공부 스트레스

>> 내가 할 수 있는 것: 마음의 준비, 일어날 수 있는 변화 예측하고 대응하기,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계속해서 성숙하기, 공부 미리 조금씩 해놓기, 아이의 인간관계와 학교 생활에 관심 가지기, 휴직하고도 할 수 있는 일 찾기(글, 그림책, 블로그, 브런치)

3. 경제적

: 임신~출산 1,000만원(산후조리원 2주 포함), 17년 기준 4억이었으므로 현재는 5억 이상으로 예상(22년 기준 월평균 72만원이라고 함 > 내가 아이를 키울 때쯤이면 월 100만원은 훨씬 웃돌지 않을까)

>> 내가 할 수 있는 것: 돈 모으기(눈물이 난다), 재테크(부동산, 주식 참여 중 / 부동산 공부 중)

4. 사회적

: 경력 단절(나는 비교적 복귀가 쉬운 직장이지만 일의 연속성 저하로 업무를 다시 시작했을 때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이 있다), 엄마라는 역할 수행에 대한 주변의 압박(엄마, 부모, 학부모로서)

>> 내가 할 수 있는 것: 휴직 전에 미리미리 업무에 대한 기록 많이 해놓기(복직 후 참고용), 신경 끄기(주변 잔소리와 사회적 분위기)

▶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낳고 싶은가?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보기

다음으로 임신과 번식 욕구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얼마 전 나는 '삶이란 기본적으로 고통과 상실(가족의 죽음, 주변인과의 멀어짐 등)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아이를 벌써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웃기지만, 어쨌거나 사랑한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는 것이 과연 맞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지만, 분명 사는 게 힘들고 벅찰 때가 이따금씩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이기적인 선택일 수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탄생하지 아니하고 '무'의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면? 혹자는 3억 마리의 정자 시절에 열심히 달려 난자를 만나고자 했던 의지는 잊은 거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허나 정자를 의식적 존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증명이 불가하므로, 그 움직임이 정말로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였는지, 혹은 어디까지나 그저 달리도록(?) 프로그래밍된 생리학적 활동에 불과한지는 모른다. 본인이 정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아이를 잘 길러내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안정적이고 존경할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며 아이의 온 생애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존재. 본보기가 될 만한 어른. 현재의 나는 그런 어른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한참이 될지도. 

아무튼 삶은 고통이며 이를 대물림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다행히 나만 했던 생각은 아닌가 보다. 진짜 이런 학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주장을 한 사람들을 모아 '반출생주의자'라고 한단다. 그들 중에는 쇼펜하우어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도 아이를 이 세계에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입장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반출생주의에 대해 더 찾아보니 유자녀 부모는 무자녀 부모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행복 수준이 낮고 생활 만족도, 결혼 만족도, 정신적 건강 상태 등이 나쁘다고 한다(CNN 보도 자료라고 함). 아이는 몰라도 부모는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다면 임신 출산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또 나는 아이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관점에서도 되짚어 보았다. 나를 포함하여 지구상 현존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우리 지구는 황폐화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재난재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서 키우는 것이 걱정된다. 한켠으론 지구를 더 병들이는 존재, 즉 인간을 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문도 들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든 잘 받아주고 성실하게 대화에 참여하는 오빠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오빠에게 자녀에 대한 모든 생각을 다다다 털어놓았다. 오빠는 이렇게 답했다.

“불행한 일을 겪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을까? 불행, 고통과 행복은 별개라고 봐. 우리도 힘든 일을 겪으면 한동안은 슬프고 괴롭지만 곧 일어나서 훌훌 털고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더 힘이 나면 산책을 하고 사람을 만나 치유받기도 하잖아. 그리고 인간은 희로애락을 통해 성숙한다고 생각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여러 일들을 통해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갈 거야.

반드시 괴로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른들의 편견이나 기우라고 생각해. 어떤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아이가 판단할 문제지, 우리가 앞서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우리는 상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잖아. 불행한 사건을 고통 그 자체로 볼 건지, 성숙의 과정으로 볼 건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또 삶을 상실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우린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디폴트인 거고, 수많은 우연이 모여 잠시 만났을 뿐이야. 우주의 경이로움을 통해 잠깐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아이에게도 그 자연스러움을 미리미리 잘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인류는 점점 나아지고 있어, 분명히. 비단 환경오염 이슈뿐만 아니라 기아, 빈곤, 정신질환, 동물권, 장애처럼 다양한 일들에 대해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잖아. 아주 오랜 시간 미개한 삶을 살았던 것에 비해, 지금과 같은 문명이 발달하게 된 건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야. 그런데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 100년 전만 해도 이런 이슈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거야.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신경이나 썼을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 사람들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고 더불어서 과학 기술도 한층 발전할 거야.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미래엔 더 그렇겠지. 인간은 환경에 대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또 우리 인간을 반드시 자연을 해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도 비약이지 않을까?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만 바라본 것 같아. 아까 말했듯이 의식이 빌전하면서 오히려 자연을 보호하고자 앞장서는 존재가 될 수도 있지.”

결혼을 결정할 때 어디선가 이런 말을 봤었다. “이 남자가 내 아이의 아빠라면 어떨지 상상해라.” 오빠는 이 말에 꼭 들어맞는 남자다. 오빠 같은 아빠라면 믿고 낳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의 말이 무작정 다 맞아서가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정말 온정적이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아빠의 자세랄까. 뒤이어 오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을 떠나서, 비니가 지금 주어진 삶을 더 기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삶을 고통으로 바라보는 것 말야. 솔직히 말하면 조금 속상하기도 해, 나랑 사는 게 힘든가? 나랑 있는 게 안 행복한가? 싶어서 약간 서운하달까. 막상 비니는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잖아? 물론 사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대부분의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잖아.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산책하고 웃고 떠들고.. 우리는 그러려고 태어난 게 아닐까? 대단한 일들이 아니어도 그런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거. 난 비니가 인생을 더 행복하게 느끼길 바라.

결혼 1년 차. 늘 행복했던 우리 부부지만, 신기하게도 오늘에야 비로소 둥지를 튼 기분이다. 오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오늘, 연인에서 부부로, 진짜 가족이 되었다. 아기새는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거센 비로 춥고 축축해질지라도, 사나운 태풍에 휩쓸려 보금자리를 잃을지라도, 우리가 함께라면 그 어떤 풍랑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서늘함은 온기로 보듬고, 무너진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아기새.. 네가 온다면, 정말로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 되어 준다면, 따듯하게 머물 자리를 마련해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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