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빠와 양평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아침 10시에 오늘 등산을 하기로 하고 점심즈음 느지막이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현관문에서 등산화를 신다 우연히 오빠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양손 가득 뭔가 바리바리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손에는 커다란 텀블러에 든 녹차, 한 손에는 두툼한 잠바가 있었고, 물어보니 등에 맨 가방에는 찐 감자와 설탕 및 소금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로 떠날 때면 늘 보던 모습이라 여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그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였으면 잠바와 립스틱만 달랑 챙겨 와서 물, 간식은 사 먹었을 것이다. 새삼 그의 준비성과 다정함에 놀랐고 또 고마웠다. 아침에 등산할 지역을 정하는 것부터 코스를 찾아보는 것도 오빠가 다 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편하고 좋았는데.. 오빠는 이렇게 챙기는 게 안 피곤한 걸까 아니면 나를 위해 노력하는 걸까.
험난한 등산을 마치고 횡성의 한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젯밤 둘 다 새벽 2시에 잠든 데다 등산까지 하느라 엄청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오빠는 망설임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다 어느 순간 갑자기 곯아떨어진 나. 한참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카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됐냐는 내 물음에 30분?이라고 말하는 오빠. 오랜 시간 기다린 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나 깨우지, 했더니 이런 대답을 한다.
“너무 곤히 자서 깨울 수가 없었어.
그리고 그동안 축구 보면 되지~ 괜찮아!
이거 봐라, 내가 아까 비니 잘 때 사진 찍었다 ㅋㅋㅋ
진짜 웃기지(확대)(또 확대)”
자꾸만 확대되는 사진 속에는 못생겼지만 어딘가 귀여운(..) 내가 누워있었다. 나는 사진에 대해 찍는 사람이 피사체에게 가지는 애정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그 초췌하고 풀어진 얼굴도 사랑으로 찍으면 사랑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사실 오빠가 나를 한없이 배려하는 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몇 년 동안.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당연해서 그냥 지나쳐 버렸던 오빠의 깊은 마음들. 오빠 옆에 선 사람이 내가 아니라 더 세심한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최고 중의 최고의 남편으로 칭송받았을 텐데. 매일 밤 어깨도 주물러주고 설거지도 자주 하는 여인이 되겠지. 하필이면 나 같은 독특한 여자를 만나서.. 하지만 그것은 오빠의 운명이지(!). 아무튼 이런 상상을 하다 보니 오빠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 오빠에게 이런 이야길 했었다.
“오빠, 나는 오빠를 사랑하지만 오빠만큼 나한테 잘해주고 다정하게 대하기는 어려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나는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쁘거든. 그럼 나는 오빠를 그냥 좋아하는 건가,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오빠를 사랑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사랑이 뭔지 궁금하네. 사랑한다고 잘도 말하지만 좀 헷갈려. 오빠는 사랑이 확실한 것 같아.
아무튼 그게 참 신기하지 않아? 오빠도 나를 만나기 전까진 지금처럼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었잖아.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다정해지고 있지. 사랑으로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 게 난 정말 신기해.
오빠를 보다 보면 우리 엄마가 아빠를, 또 우리(친오빠와 나)를 사랑하는 게 떠올라. 그런 거 보면 오빠랑 우리 엄마랑 참 닮았어.”
이 말에 오빠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선선한 대답을 했던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던가.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 걸 보면 그 연유는 오빠 자신조차도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나 보다. 따듯한 남편이자 엄마처럼, 아빠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선생님처럼, 선배처럼. 난 좋은데 오빠는 어깨가 잔뜩 무거우면 어떡하지. 주기적으로 좋은 아내, 의지할 수 있는 아내가 되겠다 다짐해 놓고 곧잘 멋대로 구는 나를 어떡하지.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 고마운 줄 알고, 다정하게 말하고, 멋지다 칭찬하고, 널은 빨래도 개고, 간만에 잠자기 전 에스테틱도 오픈해야지! 오빠, 오빠를 떠올리면 보고 싶어서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고 보고 있으면 귀엽고 웃기고. 고마워서 가슴이 따듯해지면. 그러면 그게 사랑 맞나? 그럼 나도 오빠처럼 속 깊고 다정한 배우자가 될 수 있나?
뭐라 말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 줘. 나도 움트는 중이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사랑이 맞는 것 같아. 사랑해.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