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 눈길 사이를 아슬하게 달려 집에 도착했다. 오빠는 어저께 내가 요리교실에서 만들어 온 찜닭에 청양고추나 만두를 더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있었다. 군침 나는 냄새를 맡으며 얼른 잠옷으로 갈아입고 아기새 마냥 저녁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는 김이 폴폴 나는 근사한 찜닭이 올라왔다. 오빠는 헬스장에 다녀온 후에 먹겠다길래, 들었던 수저를 내리곤 집을 나서는 오빠를 졸졸 따라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빠의 목덜미가 너무 휑해 보이는 게 아닌가. 이러다간 감기 걸리지 싶어 안방에서 목도리와 장갑을 챙겨 나왔다. 그런데 장갑은 선뜻 받아 든 오빠가, 목도리는 거추장스러울 것 같다며 한사코 거부하는 거다. 사춘기 아들 녀석처럼 밀어내는 오빠를 보고, 나는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가 되어 아랫입술을 말아 넣고 다그쳤다. "너 이러면 추워! 아주 그냥 감기에 제대로 들릴라고!" 허리춤에 올린 양손과 짧고 강한 어조가 다행히 설득력 있었는지, 그런가? 하며 살그머니 웃더니 목을 내미는 너. 이건 분명 챙김 받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 거다.
엉성하면서도 꼼꼼하게 목도리를 둘러 오빠를 보내고, 거실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긴다. 아니, 돌이켜보니 이렇게 멋지게 사색한 건 아니었고. 열심히 그리고 전투적으로 닭다리를 뜯으면서였다. 양념에 폭 젖은 찜닭이 어찌나 맛있던지. 닭고기, 감자, 당근, 파, 다시 닭고기 순으로 먹으면 웬만한 코스요리 부럽지 않다. 사설은 이만하고, 내가 어떤 감상에 젖었냐면.
고마워, 너무 맛있다 이거. 피곤하고 또 바쁠 텐데. 너의 다정다감함을 느낄 때면, 나도 네게 더 잘하고 싶어. 아니, 잘할게. 내가 목도리를 만들진 못해도 든든히 둘러줄 수는 있어. 요리도 마찬가지야. 맛있게 만드는 덴 재주 없어도 맛있게 먹는 건 정말 자신 있지. 네가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된 것처럼 말야. 그렇다고 내가 꼭 하나씩 부족한 사람은 아냐. 양쪽 모두 잘하는 것도 있지. 네 말에 해맑게 웃는 것도 잘 하지만, 뭣보다 난 널 웃게 만드는 사람이거든. 네 입꼬리를 컨트롤하는 데에 나만큼 선수는 없을걸. 네가 그랬지, 잘 웃는 여자보다 재밌는 여자가 좋다고. 어떡하냐! 너, 임자를 만났네. 어쨌거나 찜닭에 만두를 넣다니, 역시 넌 배운 남자야.
촉촉해지려던 마음은 결국 촉촉한 만두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지만, 얼마간 감동하고 새 다짐을 한 것도 사실이다. 사랑해, 순서 없이 툭 튀어나와 버렸네. 뭐라 더 설명을 하려 했는데. 마지막을 고백 공격으로 장식하려 했지만 마음이 먼저 서둘러 버리니까 할 말이 없잖아. 별 수 있나, 또 사랑한다고 얘기해 줘야지. 언제부터였을까, 미친 듯이 두근대던 첫 만남부터였을까, 네가 날 찾아 제주도로 날아온 여름날이었을까, 남이사! 를 외치며 결혼을 결심하던 때였을까, 네 손을 잡고 식장을 걸어가던 날이었을까, 얼마 전 우리만의 둥지를 틀었다 생각한 순간이었을까, 순진한 얼굴로 가로누워 조잘대며 내 속을 간질이는 매일밤일까. 너는 이 중 어디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니. 나를 보며 얼마나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었어. 나도 꽤 많이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너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칠 것 같아. 그래서 조급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전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