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반, 회사에 가는 날도 아닌데 나름 일찍 떠진 눈이 약간 원망스럽다. 왜 눈이 떠졌나 했더니 배가 쌀쌀 아프다. 그저께 먹은 양꼬치로 어제도 배가 아팠는데 오늘까지 여파를 미치나 보다. 얼른 화장실에 가야 한다. 잘못된 배를 부여잡고 일어난다. 옆을 슥 쳐다보니 체리는 아직 꿈 속이다.
대자연을 맛보고 화장실을 나오니,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체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본다. 두툼한 이불속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온다. 몰폰을 하고 있군. 그새 깼나? 일부러 낮고 무서운 말투로 “야”하고 부르니 이불 안이 분주하다. 빛을 발하던 핸드폰이 꺼지고 그만큼의 볼록 튀어나와 있던 형체가 빠르게 가라앉는다. 황당해서 “핸드폰 하는 거 다 보이거든? 밖에서 보면 빛나거든?”하며 이불을 확 걷으니 장꾸 같은 얼굴로 웃고 있는 체리. “어떻게 알았지?ㅎㅎㅎ”
안아달라며 통 떼쓰는 탓에 팔 하나만 얹어줬더니 나를 제 안에 마구 가둔다. 이런 자세를 은근 불편해하는지라 조금씩 빠져나와 머리만 체리의 가슴팍 위에 두고 팔다리는 멀리 펼친다. 이렇게 했더니 머리만 올리는 건 또 무거운지 낑낑대며 날 밀어내는데, “가만 있숴!!” 외치며 체리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콩닥 보다는 쿵덕에 가까운 둔탁한 소리가 난다. 쿵-덕, 쿵-덕. 어린아이라면 콩닥콩닥 하려나. 이첨판이 어쩌구 삼첨판이 어쩌구. 좌심실이 혈액을 짜내는 소리. 이 피가 돌아 체리의 전신을 감싸겠지.
고백하건대 나는 종종 오빠의 존재를 비현실적으로 느낀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게 꼭 꿈만 같달까. 이렇듯 너무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 웃기지만 한편으론 게임 NPC처럼 느끼는 것도 있다.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서인지 아무 말이나 해도 될 것 같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이상한 생각인 거 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오빠는 이를 보고 싸패 같다 말한다. 아무튼 간만에 오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오빠는 역시 사람이지. 어디 뜬구름처럼 떠다니다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고 나처럼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 둥둥 부유하던 존재를 지상에 확 끌어당겨 온 듯한 감각을 느끼며 다시금 되새긴다. 그래, 오빠는 여기 있어. 오빠한테 잘해줘야지. 이따 카페 갔다 돌아오면 청소기부터 돌려볼까? 오빠가 좋아할 거야. 여전히 내 머리가 무겁다며 밀어내는 오빠다. 미안하지만 이런 건 안 미안해, 속으로 답하며 오늘 오빠를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