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미국 LA를 중심으로 2007년 결성된 ‘하임(HAIM)’은 세 자매(에스테 하임, 다니엘 하임, 알라나 하임)로 구성된 밴드입니다. 사실 이 밴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 몇 년 전 여름(2019년) 유튜브 알고리즘이 소개해준 ‘Summer Girl’을 알고 있을 뿐이죠. 도입부부터 시작되는 드럼과 베이스의 비트가 끌렸고, 나직하지만 리듬감 있게 내뱉는 멜로디는 상큼하게 느껴졌어요.
LA 생각만 해, 난 숨 쉴 수 없어/눈을 감으면 네가 보여, 닿기는 너무 어렵고/너의 미소는 다시 슬픔이 돼, 그것은 같은 거야/그리고 너는 언제나 알아. 넌 언제나 알아/난 너의 여름의 소녀야 (중략) 모퉁이를 돌다가 너를 봤어/내 어깨 너머로, 난 당신이 필요해/그리고 네가 날 이해해줬으면 해/그리고 이것은 지진훈련이야/고속도로 고가도로 아래에서의/너의 검정 선글라스 뒤에서의 눈물/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이 가시지/내 옆에서 걸어/내 뒤가 아닌/조건 없는 내 사랑을 느껴줘
노랫말은 다니엘 하임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연인이자 앨범 프로듀서인 애리얼 레크사이드가 암을 진단받자 다니엘은 그런 그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보내기 위해, 그의 햇빛이 되고 싶어서 이 노랫말을 썼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Summer Girl’은 마치 치어리더가 된 듯 상대방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건 훈련일 뿐이야. 눈을 감으면 네가 보여. 내 옆에서 걸어. 조건 없는 내 사랑을 느껴줘’
영어 노랫말을 따라 부를 재능은 없지만 두두, 흥얼거리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맥락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그 행복의 기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어요. 분명 제 출근길이나 퇴근길은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거든요. 웃으면서 전동차를 탄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출근길은 앞으로 보내야 할 시간들이 막막하고, 퇴근길은 다음날 업무를 헤아리다 골치가 아파요. 걱정이나 고민, 불안을 달고 사는 제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습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걱정을 부러 끄집어내는 경우도 흔합니다. 퇴근하고 나면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챙겨 먹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데, 이렇게 굳이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올라가는 물가와 생활비를 생각해보면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제 마음 상태 같은 건 중요하지 않죠. 발을 계속 굴리며 출근하고 퇴근해야 저는 어떻게든 제 생활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모든 어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면 이른 아침 버스와 지하철 등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 많은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이건 정말 지겹고도 고된 일이거든요.
어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출퇴근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무얼 할까요?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즐깁니다. 저는 대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습니다. 책을 볼 때는 독서에 방해가 안 되는 음악을 선곡하고, 독서가 싫을 때는 알고리즘에 맡겨 음악을 듣습니다. 익숙한 노래를 반복해서 듣기보다는 라디오에서 만나듯, 새로운 노래와 마주칠 때가 더 반갑고 좋거든요. 그중 어떤 노래들이 귀에 꽂히면 그날은 유난히 좋은 날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는 절 위로하고 쓰다듬습니다. 때로는 제 몸과 마음을 일깨우고 각성시키기도 합니다. 제 하루가 온전하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노래들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제 옆, 이제는 부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이를 악문 제 곁을 함께 걷는 건 오직 그 노래들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노래들은 저의 Summer Girl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제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는 존재들이니까요. 게다가 그들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어요. 그러니 출퇴근길에 듣는 이 노래들을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