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호우시절은 두보의 시 ‘춘희야우’의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이란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구절은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봄이 되니 내린다’는 뜻으로 호우시절은 흔히 ‘좋은 때를 알고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노래 역시 마찬가지여서 시간이 지나 주목받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과거의 노래와 영상 등 콘텐츠가 올라오면서 10대들도 옛 노래를 아는 경우가 흔합니다. 텔레비전보다는 라디오에서 더 많이 활동했다는 그룹 아침의 노래 ‘숙녀예찬’은 ‘시티 팝’의 열풍에 힘입어 얼마 전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깨끗한 느낌 내게 보여준 싱그러운 아침 햇살처럼 상큼한 그대만의 향기가 나의 가슴속에 스며드는데 good lady, 하얀 작은 손을 가진 그대여 가슴 설레이게 해 good lady, 따스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웃어줄 순 없겠니 그대의 귀여운 작은 입술 포근히 느껴지는 환한 미소 긴 밤을 지새우고 싶다고 얘기할 용기가 나질 않아
1990년대 초반에 활동을 시작한 팝 재즈 그룹 아침은 노래를 부르는 유정연과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 두 명으로 결성됐습니다. 선화예중과 예고, 서울대 음대를 함께 다녔던 둘은 각자 활동하다 유정연의 제안으로 1991년 ‘아침’이란 이름으로 모입니다. 이영경은 이후 박광현이 조직했던 재즈 밴드 ‘데이지’의 멤버로 활동하다 아침을 탈퇴하게 됩니다. 현재는 사실상 유정연의 개인 프로젝트 그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숙녀예찬’은 1992년 발매한 1집의 6번 트랙에 수록된 타이틀 곡으로 유정연이 노랫말을 쓰고 유정연‧이영경이 함께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습니다. 십여 년 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가요라고 하면 떠오르는 뽕짝 멜로디가 아니었으니까요. 팝 재즈 느낌의 세련된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특별하진 않지만 깔끔한 노랫말은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실은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몇 번이고 찾아서 듣습니다.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 노래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습니다. 1994년 미국에서 녹음해 2021년에야 발매한 2집은 언론에서 주목했으나 확실히 1집만큼의 반응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뭐 어떤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숙녀예찬’ 같은 명곡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 수십 년 지난 지금 젊은 세대들도 열광하는 곡을 만들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닐까요. 좋아한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경우는 흔하거든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는 이런 걸 ‘예술병’이라고 부릅니다. 제 경우에는 책과 글자에 빠져 문학을 전공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차라리 경영학이나 신문방송학 같은 걸 전공했다면 별다른 욕심 없이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사회 초년생 시절 저는 예술병에 걸려 직장을 자주 그만두고 다시 취업하고, 그리고 다시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전업작가의 꿈을 이루기에는 실력도 의지도 한참이나 모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쉽게 잊히지 않는 문학이 제 발목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직장생활에 적응한 지 오래된 요즘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이루거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요. 사랑하는 소설을 직접 쓰고 싶은 마음은 아직 있지만, 그게 꼭 ‘등단이나 책 발간’이라는 관문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비슷합니다. 한때 소설에 제 인생을 바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겐 제 일상과 삶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소설은 그 안에서 저를 밝혀주는 불빛 같은 존재입니다. 압박감 없이 읽고 생각하고 씁니다. 이렇든 저렇든 저는 소설과 함께 살아가며 늙어갈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런 제 미래가 싫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