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제가 일하는 직장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습니다. 이곳이라고 나무와 풀,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심 속 자연은 임시방편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정 급하면 이리로 와서 자연을 느껴보라고 충고하는 것 같아요. 생각으로는 매달 사려니숲길 같은 곳에 가고 싶습니다. 되도록 그런 곳에서 살다가 자연의 일부분이 돼 사라지고 싶습니다.
모리야마 나오타로(森山直太朗)는 2001년 인디 씬에서 싱글을 내며 데뷔한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이 가수는 2년 전부터 본인의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user-yv6oi9cc1l/videos)을 통해 야외에서 노래 부르는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후지산, 한산한 어느 식당, 캠핑장, 운동장, 주차장, 교실, 편의점, 꽃집 등 장소가 참 다양해요. 그리고 그곳에서 그 장소와 연관이 깊은 노래들을 부릅니다. 각 공간이 발산하는 소리가 모리야마의 기타 연주·노래와 함께 어우러집니다. 8월 30일 올라온 가장 최근 영상을 보면 그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 있는 히카와 신사에 있습니다. 신사의 수백 수천 개의 풍경이 몸을 움직이며 소리 내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여름의 끝’이라는 노래입니다.
토란이 흔들리는 논길을 나란히 걸으며 꿈을 꿔요/흘러가는 시간에 대나무 배를 띄워요/불타 떨어진 여름 사랑 노래,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물거품/하늘은 황혼/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그치지 않은 빗속에서/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림자도 없는 역에서/여름의 끝, 여름의 끝에는 단지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언젠가와 같은 바람이 불어 나가니까/추억은 사람의 마음의 상처 난 자리에 짙게 스며들어요/안개가 서린 들에 여름 풀은 무성해요/그때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헛되게 지나간 걸까요/얕게 흐르는 냇물처럼/누군가가 말을 꺼낸 말들을 모아도/모두가 잊어가는 여름의 날들은 되돌아오지 않아요/여름의 기도, 여름의 기도는 묘한 반딧불의 조사/바람이 흔든 풍경의 울림/여름의 끝, 여름의 끝에는 단지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언젠가와 같은 바람이 불어 나가니까/여름의 끝, 여름의 끝에는 단지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언젠가와 같은 바람이 불어 나가니까
날짜상으로 보면 가을이지만, 날씨는 아직 여름 말엽으로 느껴집니다. 여름의 끝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유튜브 영상으로 모리야마의 노래와 함께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는 황혼이 진 하늘 아래, 풍경이 흔들리는 신사의 한편에서 자신만의 그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찬란했던 여름은 저물어가고 그 사람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흔드는 풍경의 울림을 느끼며 행복했던 시절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지나간 여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오는 여름은 2024년 여름일 테니까요. 시간은 언제나 그렇잖아요. 한 번 흘러가고 나면 영원히 제게서 멀어집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억과 추억뿐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요. 과거나 미래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흔드는 풍경의 소리가 다시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과거의 당신이 아니라, 현재의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말이죠.
지금 제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과거의 그가 아닙니다. 2023년 현재의 그가 제게 걸어와 주길 바랍니다. 어서 제 곁으로 와서 토란이 흔들리는 논길을 나란히 걸을 수 있길 바랍니다. 여름의 끝에서 저는 온몸과 마음 다해 사랑했던 누군가를 사무치게 떠올립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풍경 흔들리는 소리가 어우러진 모리야마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으면 당신은 이미 그곳에서 그 사람과 나란히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