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추석 연휴 전이면 항상 일에 치여서 정신이 없습니다. 출판대행업이라는 일이 항상 그래요. 추석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클라이언트들은 저 같은 에디터를 닦달하기 마련입니다. 몇 권의 책자를 왔다 갔다 작업해서 마무리하고 늦은 밤 퇴근하는 길이면 몸과 마음 모두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습니다. 힘이 다 빠져서 흐물흐물해진 기분이에요. 그럴 때면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고, 살이 닿는 것도 싫어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지하철로 출근하는 이번 생에는 그런 일이 좀처럼 없지요. 지하철 전동차 한 구석에 서서 조용히 에어팟을 끼고 이런저런 노래를 듣습니다.
살다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 너무도 많아 나도 한번 꿈같은 사랑해봤으면 좋겠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 걱정 멀리 던져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이를테면 이 곡도 그중 하나입니다. 1994년 발표된 이 곡은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일명 노찾사)’ 출신의 권진원이 낸 솔로앨범 2집의 타이틀곡입니다. 1994년에 가요를 즐겨듣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땐 권진원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데다 고운 목소리지만 허스키한 느낌도 있어 매력적이었어요. 물론 윤도현의 목소리가 코러스로 등장하는 후렴구를 특히 좋아하긴 했지요. 한참을 잊고 있던 이 노래를 다시 꺼내어 들어봅니다. 노랫말에 한참이나 눈길이 머뭅니다.
그렇죠. “살다보면 괜시리 외로운 날이 너무도” 많더군요. “나도 한번 꿈같은 사랑해봤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도 많고요. 힘든 일이 겹칠 때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요.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면 좋겠지만, 당장 오늘 행복했으면 좋겠죠. ‘이건 완전 내 이야기잖아?’ 전동차에 서서 노래를 들으며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근심과 걱정들은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이런 노랫말을 썼다는 건, 그리고 이 노랫말이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는 건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최근 들어 온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퇴근길이 많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짜증과 고민, 불안이 뒤섞여 있었어요. 매조지지 않는 고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괜시리’(‘괜스레’가 표준어이지만 노랫말을 살려 씀) 주변에 화를 낼 때도 있었죠.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이 노래가 저를 넌지시 쓰다듬어줬어요. 따뜻하고 포근했어요. 저도 모르게 바보처럼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누가 봤을까 봐 얼굴이 달아오르긴 했지만, 뭐 어떤가요. 전동차 안의 사람들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지도 모르잖아요.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존재가 항상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혼자서 고민하거나 우울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누군가를 찾아봤지만 해답을 찾았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이 노래 한 곡이 제게 평화를 찾아주었습니다. 알고 보면 사람들도 다들 힘든 삶을 간신히 이겨내고 있다는 것,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노래입니다. 어쩌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