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몇 년 전부터 저만의 루틴이 하나 생겼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기운을 차리고 싶을 때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겁니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길 마음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연말 마지막 공휴일 중 하루일 수도 있어요. 제게 크리스마스는 이유 없이 가슴이 뛰는 날입니다. 이날과 관련한 좋은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유튜브의 캐럴 플레이리스트를 여러 버전으로 준비해 그날 취향에 따라 골라 듣고는 합니다. 재즈, 피아노, 밴드, 레트로, 클래식, 2000년대 이후 캐럴 등 유튜브에는 캐럴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징글 벨, 징글 벨, 징글 벨 락/징글 벨이 흐르고 징글 벨이 울리네/눈이 내리고 즐거움을 한 무더기 터뜨려 버리면서/이제 징글 홉이 시작되었네/징글 벨, 징글 벨, 징글 벨 락/징글 벨이 징글 벨의 시간에 울리네/징글 벨 광장에서 춤추고 뛰어다니며/이 추운 공기 속에서/정말 눈부신 시간이구나, 지금이 딱 알맞은 시간이라네/락으로 밤을 날려버리기에/징글 벨의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라네/한 마리 말의 썰매를 타러 가기에
미국 가수 바비 헬름스가 1957년에 발표한 ‘징글 벨 락(Jingle Bell Rock)’도 그중 하나입니다. ‘징글’은 달랑달랑 흔들리는 방울 소리를 뜻한다고 해요. 일반 ‘징글 벨’이라면 크리스마스에 울려퍼지는 방울 소리를 뜻하는데, 거기에 ‘락’이 붙었습니다. ‘락’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는 뜻이라고 해요. 즉, ‘징글 벨 락’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울이 소리를 내듯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노래입니다.
바비 헬름스는 노래 제목처럼 도입부부터 감정을 조절하거나 침착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신나게 ‘징글 벨 락’을 외쳐댑니다. 노랫말 속에 어두운 감정이나 애잔한 마음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눈부신 시간이구나, 지금은 딱 알맞은 시간이라네”라는 노랫말을 듣다 보면 고개를 까딱 흔들게 됩니다. 24시간 하루를 살며 대책 없이 웃을 날이 얼마나 되나요? 제 경우에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긴장하거나 초조해하고, 불안하거나 흔들리고, 안도하거나 멍하니 있는 정도죠. 조건 없이,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대책 없이 실컷 웃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사는 게 허무해지더군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생존을 위해 살고 있었어요. 그것도 간신히 버티며 살고 있었어요. 밥벌이는 왜 그리 고되고 고단한지요. 사람 비위 맞추고,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처하고, 글자 하나 놓칠세라 뚫어져라 모니터를 들여다 봅니다. 같은 글자를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비로소 안심하고 출력실과 인쇄소에 데이터를 넘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저를 위로해준 것은 노래들이었습니다. 특히 ‘징글 벨 락’ 같은 캐럴이었죠. 대책 없이 밝잖아요. 전 그게 좋더라고요. 구체적이고 세밀한 내용이 담긴 게 아니라, 무작정 웃으라고, 희망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았어요. 캐럴의 빈틈 안에 제 이야기들을 채워 넣을 수 있었으니까요. 맥락 없는 희망이 저의 희망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죠.
저는 올해도 캐럴을 들으며 맥락 없는 희망을 꿈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제 상황 역시 제자리입니다. 돈을 대주는 이들의 입맛에 맞춰 아양 떨고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자존심을 팔아야 합니다. 참, 먹고살려면 자존심은 집에다 두고 오는 것이 좋죠. 자존심을 두고 나온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제겐 ‘징글 벨 락’이었습니다. “징글 벨의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라네” 제 머릿속에서 떠도는 맥락 없는 희망을 붙잡아서 피와 살을 붙입니다. 그러면 조금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납니다. 그 잠깐의 환상, 짜릿한 공상이 제게는 유일한 위안거리입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나요? 오늘도 밥벌이를 위해 자신의 몸과 영혼을 팔아야 하는 모든 이를 응원하며 이 노래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