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창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쇠고랑을 채운 사람은 없었지만 전 항상 정해진 영역 안에서만 갇힌 채 살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학창 시절의 집단따돌림과 폭력 피해, 군 복무 시절 겪은 무차별 폭력은 제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제대 이후 한동안 갈 길을 잃은 것 같았어요. 몇 번은 군 복무 시절의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는데, 그럴 때마다 제 일처럼 울고는 했습니다. 정말 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청춘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청춘을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동안 저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청춘은 없었던 걸까요? 언제나 겨울 같았죠. 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뿐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군 복무 시절 상병이 되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했거든요.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군기를 잡거나 집단 얼차려를 줄 때 저도 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계급의 지위를 이용해 편의를 누렸던 것도 사실이고요. 제대 이후 피해와 가해의 트라우마가 겹치며 절 가로막았습니다.
창밖엔 하늘이 없고 창 안엔 숨결이 없고 넌 항상 다정한데 나와는 상관없지 생각 없이 얘기하고 사랑 없이 사랑하고 아픔 없이 버리게 된 건 이제는 당연한 얘기 누구나 다 그렇지 너무 모자라 목이 말라와 나를 채워줘 나의 마음이 숨 쉬고 또 느끼며 살아가도록
바쁘게 달아나 버린 오늘을 돌아보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시간의 사슬에 감겨 이런 게 아니라고 말한 게 늦은 거지 뭔가 또 알 수 없이 자꾸만 작아지며 나를 또 잊고 싶어
가까이 와줘 나는 외로워 나를 지켜줘 너와 함께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도록 가까이 와줘
나는 외로워 나를 지켜줘 너와 함께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도록
신중현의 아들인 기타리스트 신윤철을 중심으로 조직된 밴드 원더버드는 1999년 1집 앨범을 낸 후 멤버를 교체하고 2002년에 2집을 냈습니다. 드럼 손경호와 보컬 고구마, 베이스 박현준이 탈퇴한 자리에는 조동진‧조동익의 여동생인 조동희가 들어갔습니다. 2집 앨범 수록곡 ‘청춘 21’은 조동희가 노랫말을 쓰고 직접 불렀습니다. 조동희는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작사하는 등 작사가로서도 능력이 탁월한 음악인입니다.
‘청춘21’이라는 제목(왜 ‘21’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뜻하는 걸까요?)에 걸맞지 않게 노랫말의 도입부는 어둡습니다. 하늘도 숨결도 느껴지지 않고, 다정한 사람의 이야기도 와닿지 않는 화자는 자신을 채워줄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죠. 나를 채워줘, 나는 외로워, 나를 지켜줘, 너와 함께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도록. 흔히 청춘이라고 하면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기성세대들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그런 이미지를 강요하는 듯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제 기억에 그 나이대 청춘들은 고민과 불안, 혼돈 속에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같은 트라우마가 아니더라도 취업이나 연애, 결혼, 경제적 사정 등 여러 장애물이 그들을 가로막습니다. 요즘 청춘들의 사정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나 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러다가 영원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저도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나이를 먹으면 답이 보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닙니다. 미로를 풀어내기란 여전히 버겁고, 불안은 결코 저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이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지금 제 상황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거죠. 길을 잃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주변이 조금 더 잘 보입니다. 저처럼 고민하고 흔들리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뿐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청춘 21’ 속 화자도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죠. 나를 지켜줘, 나는 외로워.
이 노래를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고민하고 불안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인식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줍니다. 이건 ‘나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의 고민’이었음을 깨닫는 거죠. 그러고 나면 혼자 애쓰기보다, 함께 더 나아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알고 보면 저도, 당신도 혼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서로 큰 관련성은 없지만, 아주 희미한 끈으로 연결돼 있는 ‘우리’니까요. 우리가 무인도에 살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이상 이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