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10대 때 우연히 접한 ‘낯선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반했습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낯선 멜로디, 쉽고 깨끗하게 아름다운 노랫말, 남녀 혼성 멤버들의 화음, 그리고 재즈풍 연주는 중학생 어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낯선사람들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의 고찬용을 중심으로 한 재즈 보컬 그룹입니다. 1집 때 가수 이소라 씨가 멤버로 있었기에 꽤 알려져 있습니다. 이소라 씨는 낯선사람들 1집 활동 이후 김현철의 눈에 띄어 솔로로 활동하게 됩니다. 낯선사람들은 당시 ‘하나음악’의 일원으로 알려졌어요. 하나음악(현 푸른곰팡이)은 조동진, 조동익 씨를 중심으로 한 음악 공동체입니다. 낯선사람들뿐 아니라 장필순, 윤영배, 오소영, 이다오 등 하나음악의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이규호 씨도 하나음악과 관계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그분의 음악을 찾아 듣다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게 됐는데요. 거기서 배영경이라는 음악인과 처음 만났습니다. 유튜브 뮤직을 통해 어린아이의 사진이 실린 2집 앨범을 찾아 들었습니다. (CD는 판매하지 않아 구매할 수 없었어요.) 1번 트랙 ‘푸른 너’부터 9번 트랙 ‘그 길 위에 다시 새벽’까지 모든 곡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차분하고 나직하게 듣는 이를 설득하는 배영경 씨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곁에서 조곤조곤 말해주는 친구 같았죠. 대개 사랑의 노랫말을 담고 있더군요. 이걸 꼭 특정 누군가를 향한 사랑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것일 수도, 앨범 표지에서 보듯 어린아이를 향한 러브레터일 수도,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연정의 대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곡이 다 좋았지만 특히 반복해서 들었던 곡은 7번 트랙 ‘그땐 우리 모두 다 사랑을 했었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규호 씨가 연주와 코러스로 참여한 노래예요.
아지랑이 피어난 수평선 위에/우리가 만든 모래성 푸른 여름날에/하늘엔 조각구름 두둥실 밀려와/퇴근길 서쪽 하늘엔 오렌지빛 하늘
눈을 감아 멀리/생각나는 날들/그때 우린 모두 다 사랑을 했었네/무엇보다 난 감정에 늘 허덕거리다/좁은 골목길에 혼자 덩그러니 서서/누군가 원망하며 모래성을 덮었네
눈을 감아 멀리 날아
생각해보면 다 기억나는 걸/나는 어느 것도 잊고 싶지 않았었나 봐/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랜 기억 순간까지도 말야
기타 연주와 함께 소곤소곤 들려오는 배영경 씨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문득 제 지난 시절이 떠오릅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어요. “감정에 늘 허덕거리다” “누군가 원망하며 모래성을” 덮어버리던 그 시절. 우린 모두 다 사랑을 했으니까요. 그게 짝사랑이든, 어떻든 말입니다. 보통 지나간 사랑은 잊고 싶기 마련인데 노래 속 화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면 다 기억난다며, 어느 것도 잊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고 고백하죠.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랜 기억 순간까지 말이죠.
누구에게나 과거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을 품에 안고서 현재를 살아가죠. 잊고 싶은 기억도,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조작되거나 변형되기도 합니다. 어떤 기억은 현장에 와 있는 듯 선명하죠. 그게 어떤 모습이든, 그 모든 기억은 내 안의 우주 안에 있습니다. 좋든 아니든 그 기억들이 없었다면 내 안의 우주는 아마 황폐하고 쓸쓸한 공간이 됐을 거예요. 당신의 우주가 특별하고 각별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당신을 관통한 사람과 인연들이 당신에게 소중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내게 깊은 상처를 줬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그들 모두는 내게 좋은 인생의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때론 삶을, 사랑을, 인생의 규칙과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나의 우주에 머물러줘서 고맙다고, 언제까지나 빛을 밝히는 별이 돼 내 안에 머물러달라고 간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