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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by Jacquesenid

국민(초등)학교 시절 제일 싫어했던 건 체육 시간이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뭘 하든 항상 뒤처졌다. 특히 단거리 달리기에 약해서 벌을 받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운동을 못하면 가르쳐주면 되지, 왜 혼내고 창피를 줬을까. 그나마 자신 있던 건 걷는 일이다. 운동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난 산책을 좋아해서 어디든 돌아다녔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서도 섬 곳곳을 다니는 게 여행의 8할이었고, 집 주변을 산책하는 일도 좋아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주변 풍경이 눈에 잘 들어왔다. 아, 이곳에 이런 가게가 있고 이런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구나. 저기 저 아이는 대체 왜 저기에 누워 있는 걸까, 저 할매는 땡볕에서 언제까지 작업을 하셔야 할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고스란히 내 머리에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 들어온 풍경들은 다른 생각들과 뒤섞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그 이야기들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됐다. 때때로 내가 일할 때 쓰는 글에 활용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 혼자 쓴 글은 없다. 대부분 글은 풍경 속 사람들과 공간, 어느 찰나에 빚진 것이다. 오랜 기간 혼자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않았고, 다가오는 사람들 대부분을 밖으로 밀어냈다. 고집을 부릴수록 더 고립됐고, 고립될수록 난 더 외로워졌다. 외로워질수록 난 더욱 고집이 세졌다. 악순환의 반복. 그럴수록 나는 혼자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골라서 다녔고, 시간대도 대개 늦은 밤을 선택했다. 특히 여행지의 늦은 밤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나 이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외계인의 계략으로 사라진 것 같은 거리에 서면, 비로소 깊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시 들이마시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잘 뛸 수는 없지만 잘 걸을 수는 있었다. 빠르지는 않지만 쉽게 지치지는 않았다. 몸의 온도가 올라가고 적당히 땀이 배어날 때면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지치지도 않고 밀려드는 그 감각 덕분에 나는 이 생을 버티었다.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이 생은 지금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각해보면 그때마저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밤하늘 높은 곳에 뜬 별과 초생달, 음악 선율처럼 들리던 서늘한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들의 춤, 그리고 걸을 때마다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들. 그들이 내게 전해주는 감각과 이야기들은 처음에는 대개 형체 없이 모호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보면 어느새 근육이 자라나고 살이 돋아났다. 어엿한 실체가 돼서도 날 떠나지 않았다. 내 주변을 떠나지 않고 배회하며 날 지켜줬다. 걸을 때마다 내 발에 맞춰 함께 걷고, 힘들 때나 괴로울 때면 말없이 감싸줬다. 내게 죽으라는 말도, 살라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가 됐던 셈이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언제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꿈 대부분은 좌절되거나 희미해졌다. 갈수록 불투명한 존재가 됐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단 하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 감각 덕분은 아니었을까. 그 감각이 필요했다. 간절히. 여태껏 곁에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잊지 않겠다. 당신들이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없이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아껴준다는 사실을. 사랑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사실도. 쓰러지거나 흔들릴 때마다 나약한 내 두 다리를 꽉 붙잡고선 조심스럽게 날 지켜봐주던 존재들은 오늘도 내 곁 어디에선가 눈에 띄지 않는 모양새로 날 힐끗거리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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