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어릴 적부터 집 한 구석에 이런 문장이 새겨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크리스천이었던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서 가져다 놓으셨나보다.
아주 오랫동안 이 글자들을 벽지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별 생각없이 마주했다.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액자를 바라보며 마음에 새기는 시늉도 했었던 것 같다만, 글쎄. 보통은 그냥 성경에 나와있다는 그럴싸한 말이겠거니 하고 액자 앞을 지나친 날들이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이 넘는다.
그렇게 십년, 이십년이 지나 내 나이 서른이 된 지금, 근 삼십년만에 집에 있지도 않은 액자 속 글귀를 진지하게 생각하다니. 새삼 남다른 기분이 드는데, 그 명문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 마음 속에 새겨져 함께 지내왔지만, 그걸 알아차릴만큼 내가 머리가 자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 때나 지금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이 문구를 가슴 속에 담아두는지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 살았다곤 할 수 없지만 나름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습득한 지혜들 중 하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절대적인 것이 없다 인간의 편협한 시각으로 무언가에 대해서 감히 '객관적' 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예수는 사람들이 매사에 불만을 품고 처지를 비관하는 것 보다는 현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끊임없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질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삶은 축복이 될 수도,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되고 기왕 사는거 고통보단 축복 속에서 사는게 좋으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라고들 말한다. 사람의 마음과 육신은 너무나 연약하여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너무나 많다. 가끔은 벌을 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인생은 쓰고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아픔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실제로 나도 아주 오랫동안 삶을 형벌처럼 여기며 살아왔고 이게 사는 건지, 죽지 않으려 버티는 건지 궁금해하던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많은 것이 바뀐다.
어린시절 무서운 형벌이었던 어머니의 회초리가 사실은 지극한 사랑이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고통이라고만 생각하던 것들이 축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태도를 바꾸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 세상살이가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지 않나?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건 아주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삶이 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더욱더 내 행복을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린 진정으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닐까? 난 이제서야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