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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 Jan 28. 2024

작심하고 미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1월 되감기

벌써 1월이 다 지나간다. 요즘 주말마다 일주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익숙해져서 1월이라는 챕터가 끝나버리자 저절로 또 한 달의 시간이 복기된다. 외로움에 누군가를 찾지도 않고, 반가움에 속아 시간을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나와 시간을 제일 많이 보냈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시간이 꽤 밀도 있고 의미 있어서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선물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은 과녁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검이라면 뭘 베야 쓸모가 있을 테고 화살이라면 과녁이 있어야 맞출 수 있잖아요.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과거의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니까 잊고 살았던 꿈들이 조금 보이는 것도 같아요."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운데요."

작년부터 2주마다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담 선생님이 처음으로 본인의 감정을 내비치면서, 부럽다는 표현을 하셨다.


사실 생각해 보면 20대 내내 이번처럼 공백기가 많았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프로젝트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2달도 쉬었으니 일반적인 직장인들보다는 방학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대부분의 빈 시간을 에너지를 비축하거나 회복하는데 집중하면서 보냈다. 열심히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은 불안해하고 고민하면서. 그리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30대 중반의 공백기는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그때는 고속도로 갓길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경치 좋은 해변까지는 아니더라도 들꽃 몇 가지 핀 그늘지고 한갓진 길가까지는 옮겨온 것 같다. '부럽다'는 말까지 듣고 보니 나는 지금 그때와 같은 공백기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라는 게 확실해졌다. 언젠가 불안의 반대가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게 맞다면 나는 지금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걸.


지난 10년 간 기록에서 찾은 가장 큰 의미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은 꿈들도 여러 번을 여러 가지로 적다 보니 몇 가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진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미 있었던 것은 끝까지 지워지지 못한 소망들에 대해 생기는 미련보다 조용하게 이뤄진 꿈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 칸을 채워 적을 때 소망하면서도 의심하던 나의 마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어느새 그 칸을 지워낼 때의 마음.

두 마음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앞으로의 리스트를 채울 꿈들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누군가는 비전이라고도, 누군가는 버킷 리스트라고도 하던데 나는 꿈이라는 말을 들을 때 아직도 마음이 몽글거린다.

좋은 일인 것 같다.


어떤 날의 나는 수챗구멍을 막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만 봐도 내 삶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시할 수도 있는 영역까지 내 모든 삶의 바운더리를 구석구석 열심히 상상해 보았다. 몇 년 째 새해 다짐 리스트에 오르는 과제들과 누군가는 망상이라고 할만큼 뜬금없는 꿈도 있었고 내일 당장 처리해버릴 수 있는 작은 일과들도 있었다. 그 여러가지들을 섞으면 어떤 게 나올까 오랜 시간 상상하면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점들이 점점 곡선 정도는 되어보였다. 아직은 얼기설기한 그 설계도를 가지고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작은 과제를 성취해나가다 보면 잔근육이라도 붙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은 계획들부터 충실히 실행해 가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매일 알람 없이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명상하듯이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러프한 듯 빽빽한 듯 할 일 목록을 채우고 나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가뿐하게 시작한다. 집중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 오는 친구의 전화도 반갑게 받고, 컨디션이 떨어지면 잠깐 멈추기도 하면서. 운동을 할 때 강사는 항상 '무리하지 말고'라는 말을 자주한다. 과거에는 이런 말을 듣고도 오기로 버티거나 무리한 동작을 이어갔는데 이제는 숨을 참듯이 뭔가를 시작하고 지속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의 레이어를 쌓아나가는 게 올해의 목표라면 목표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새해가 밝은 것 같은 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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