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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 Jan 21. 2024

회사를 그만두고 진자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

2년 8개월. 긴장과 설렘으로 첫 출근을 해 눈칫밥만 먹다가 퇴근하고, 어느덧 적응이라는 과정을 거쳐 온갖 번뇌와 환희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애정이 깊어지기도 했던. 그러다가 다시 출퇴근 도장만 찍으면서 다니던 시절을 지나 가방도 없이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지옥철에 몸을 싣다가 그럴만한 시기에, 그럴만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년 9월 말의 일이다.


그리고나서 한 계절이 가고 겨울이 되고 이제 분기라고 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날이 서늘해질 때쯤 더운 나라로 떠나 방학 같은 여행도 다녀오고, 지방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 오랜만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막연하던 근황을 목격하고, 프리랜서로서의 수입도 있었다. 입사 전 하던 일로 오랜만에  한 달짜리 짧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많게는 10살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20대를 추억하기도 하면서 겨울을 맞았다. 여기까지는 꽤 그럴듯한 퇴사 후 행보였던 것 같다.


다시 충분히 쉰 것 같았을 때 연말이 찾아왔고 여기저기서 모임을 갖자는 연락이 왔다. 슬슬 불안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일까.     

요즘? 글쎄.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 뭐라고 말해야 수긍할까.

조용하게 정리되어 전진하고 있는 일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면 으레 나를 배려하는 걱정 어린 격려가 돌아왔다. 천천히, 쉬면서, 조금씩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라는.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다.


연초가 되니 방학이 끝난 것처럼 주변은 다시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멈췄던 기차가 움직이듯이 2024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각종 프로모션이 쏟아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듯 일터로 출근해 해야할 일들을 하며 도약하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를 보면 나도 빨리 새로운 직장을 찾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미래로 나아가고 있을 때 어쩐지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걷게 되었다. 1년을 계획하기에 앞서 과거의 기록들이 이상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눈에 띄어 나를 자꾸 잡아끌었다.


2013년부터 23년까지 10년을 기록해 온 일기장.

레트로가 유행한다길래 본가에서 가져온 디카에 남아있던 첫 여행의 기록들.

그때그때 쌓아두고 보지 못한 각종 플랫폼의 인사이트들.


과거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나는 거짓 없는 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서스름없이 고백하던 어린 날의 글들이 왜 지금 읽어도 반짝거리는지, 절절한 마음을 여실히 티 내면서 가슴이 철렁하는 일에는 철렁했다고 말하고 부러운 것에는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고 지내던 첫사랑이 떠오른 것처럼 설렜다. 과거의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물감이 번지듯 점점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그려졌다. 근 일주일은 거의 과거의 기록을 되짚어가며 미래의 비전을 작성하는 시간으로 보낸 것 같다. 진자운동이 시작된 것처럼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새로운 직장을 찾고 싶지 않던 마음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언젠가는 나 또한 남들과 같은 기차에 오르겠지만 당분간 내 목적지가 새로운 직장은 아닐 듯하다.

어쨌든 나는 정류장에서 일어났고 기차는 출발했다.

이 여정이 설레고 나는 이 여정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나갈 것이다.

앞으로의 기록은 나의 진자운동이 어떤 곡선을 그리는지에 대한 발자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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