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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 Jan 24. 2017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죽었다. 손목을 긋고 그녀는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죽음을 맞닥드린 그 순간에 그녀는 살고 싶어 했다. 멈출지 모르는 오른 손목의 피를 보며, 그녀는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려줘, 나 피가 너무 많이나.’ 그는 흥분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고, 서둘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녀만큼 흥분해 있었고, 119에 그녀의 주소를 정확히 불러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딱 10분 걸렸다. 그녀가 살려는 마음을 먹었고, 그에게 전화했고, 그녀에게 119가 도달하기 까진 걸린 시간 말이다.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어있었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요원은 서둘러 지혈을 했다. 그녀는 구급차 안에서 수혈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녀는 쇼크 상태였고, 네 개에 달하는 혈액 봉투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욕실부터 거실까지 피투성이었다.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베이지색의 도배지가 예쁘다고 칭찬했던 공간은 이미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119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그녀가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르는 링거를 꼽은 그녀를 마주 해야만 했다. 그녀의 피부는 하얗게 질려있었고, 손발을 축 처져 있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저곳에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났고, 무서웠고, 슬펐다.


  ‘삐이이이이’ 소리가 나며 경고음이 울렸다. 그 순간 몇 명의 간호사와 의사가 뛰어들며 그를 밀쳐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잠시 뒤에 그는 의사가 말하는 2014년 12월 31일 12시 7분의 사망선고를 들어야만 했다. 중환자실에서 끌려 나오시피 한, 그는 작은 좌식의자들이 쭉 이어진 대기실에서 오열했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저곳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삶이 이어지던 25년 동안, 거의 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연탄을 피어 올리는 방법,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하는 방법, 손목을 긋는 방법 중 어느 것이 가장 안 아플 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세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대부분 경미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는 경찰의 특별보호감찰 대상이 되었고, 법원은 그에게 정신병원 진료를 권고했다. 그가 25살이 되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세 번의 자살시도와 이 년이 넘는 정신병원 진료기록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심리학과를 갓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실습을 나온 심리치료사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을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마주쳤다. 그는 친절하고 상냥한 치료사와 보내는 두 시간보다 그녀와 대기시간에 나누는 잠깐의 시간이 더 행복했다. 언제나 딱 맞춰 가던 진료시간을 그는 매 번 삼십 분 먼저 갔다. 그리곤 그녀와 커피를 마셨고, 가벼운 일상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웃음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심리 센터에 그는 꼬박 1년을 다녔고, 정신병원에서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신적으로 그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감정 기복은 훨씬 덜해졌고, 우울함이 찾아오는 주기와 기간은 점점 짧아졌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이 주는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환자와의 데이트는 금기 아닌 금기였기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생각보다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신 그녀에게 오빠 동생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제야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와 그녀는 자주 연락했고, 가끔 만나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그녀에게 많은 비밀을 털어놓았고, 그녀도 점차 그에게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건넸다. 모든 것이 올바르게, 잘 가고 있어 보였다.

그는 25년을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항상 품 안에 가지고 있었고,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삶’이라는 선택 사항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사랑’이었고, ‘애정’이었으며, ‘행복’이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와 어느 때처럼 만나던 날이었다. 쨍쨍하기만 하던 날이 갑자기 비구름 속에 뒤덮였고,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뚝뚝 땅으로 떨어졌다. 반쯤 젖은 채로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문득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마치 꽁꽁 숨겨뒀던 비밀의 문을 열듯이 그녀는 그를 바라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 오빠는 비 오는 날에 슬픈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학설에 따르면, 첫 번째는 습도 고, 두 번째는 햇빛 때문이래요. 습기가 많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햇빛이 없으면 신체의 멜라토닌이 분비가 안된데요.”

그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웃었다.

“있잖아요. 전 비 오는 날이 언제나 싫었어요. 비가 오는 날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거든요. 어머니가 비 오는 날 저를 떠났고, 그러고 나서 제가 태어났어요. 사실 어떤 게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요. 아버지는 저한테 연할 연에 비우라는 이름을 줬고, 그걸 기억하길 바랬는데, 전 그게 너무 싫어요. 사실 그냥 다 잊어버리고 싶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그와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들은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였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한 채, 병원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담배가 반쯤 타오를 때쯤, 물방울 하나가 그의 손등에 톡 하고 떨어졌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빗줄기가 하나 씩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발’, ‘개새끼 같은’ 그는 하늘에 대고 떨리는 가슴을 안고 크게 비명에 가까운 소리 질렀다. 이 슬픔을 그는 토해냈다.


  평생을 살기 위해 있던 그녀는 떠났고, 죽기 위해 있던 그는 세상에 남았다. 그녀는 아주 잠깐, 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와 그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한번쯤 생각했듯이 말이다. 어쩌면 30초 정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저 운이 조금 나빴다. 조금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었고, 무서운 탓에 조금 깊게 손목을 찔렀을 뿐이다. 그는 입에 문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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