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오는 밤에
어릴 때는 학교 숙제로 일기를 썼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써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매년 새해가 되면 그해의 목표를 다이어리에 또 적어놓는다. 당연히 일기는 나만 보기 위한 것들이었다.
초등학교 숙제로 억지로 썼던 일기를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읽어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꾸 내 일기를 읽어주시거나 어느 날은 일어나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럴수록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던 건지 내가 보는 나의 일기에 각종 수식어와 미사여구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더 이상 나만의 일기가 아니었다. 분명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글짓기에 관련된 상은 많이 받았었다. 제일 큰 상은 학교 대표로 시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것이고 교장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직접 불러서 교단에서 상장을 받았다. 책으로도 출간되어 집 어딘가에 있다.
내성적 관종의 성인이 된 나는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해놓고 팔로워도 없는 상태로 매일 스토리를 올리고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일기 같은 10개의 글들을 써놓았다.
그리고 어제오늘 나의 도라이 면모가 심하게 보이는 글을 사천 명이 넘게 읽어주셨다. 내가 심상치 않은 도라이라는 것을 이제 사천 명이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부끄러워서 지우려 했지만 하필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의 앞부분의 자기 자신대로 존재하라는 내용을 읽은 뒤 그냥 두기로 했다. 나는 예민하고 까칠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오늘 아침 부가세 신고가 잘못되었다며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하필 그 시간에 카페에는 갑자기 손님이 많이 오셨다. 커피를 제대로 내려준 건지도 모르겠고 잘못 신고한 부가세 신고서부터 확인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오신 단골분이 계속 말을 거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빨리 음료를 내어드리고 신고서를 확인했다. 세무서에서는 이번 주까지 수정 신고해달라 하셨지만 이런 오류들이 발생하게 되면 나는 당장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행히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끝내 놓은 것 같아서 퇴근길은 발걸음이 가볍겠지만 수정신고를 오늘 끝내지 못했다면 끝냈을 때까지 계속 부가세 신고 생각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나 자신으로 살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주 피곤하게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도대체 완벽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도달해야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