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자영업은 처음이지
올 한 해는 온전히 자영업자의 삶으로 살았다. 자영업자는 생각보다 더 개인시간이 없다. 초반에는 쉬고 싶을 때 쉬고자 했었고 가게문을 열지 않으면 어차피 내 손해며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것까지 감안하고 가게 문을 닫고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코로나에 걸려 격리기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가게는 오픈을 했다. 그렇게라도 생활패턴을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저 가게를 지키고 있었을 뿐..
집안 행사가 있을 때는 나 때문에 시간조절을 해가며 주말 늦게 저녁을 먹게 되고 가족들이 모든 시간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굉장히 미안했다. 이게 뭐라고 큰돈 버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아직도 하고 있지만 초반에 쉬고 싶을 땐 쉬자고 했었던 중반으로 넘어가고 단골분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거의 일정한 시간에 오시는 단골분들께 예고 없이 문을 닫게되었을때 오셨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생각하니 아침에 눈떠서 침대 속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게로 나올 수 있게 해 줬다. 약간의 책임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오피스 상권이야 선택지가 많아서 사무실 앞의 카페가 문을 닫으면 옆 카페로 가야 하지만 이곳은 선택지가 별로 없는 주거상권이다.
가끔 나태해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나 내가 무엇을 얻고자 지금 이러고 있는지, 다쳤을 때나 진상들이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들.. 가끔 멘털이 나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옆에서 채찍질을 해주고 당근을 준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의 책임감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서울로 다시 이사 오고 나서 자주 보지 못한 친한 지인에게 오랜만에 예고없는 방문을 했더니 크리스마스 선물같이 네가 와줬다며 그저 얼굴 보고 수다 떨었을 뿐인데 감사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셨다.
그리고 항상 나를 혼내는 선생님 같은 이전 회사의 후배도 내가 멈춰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마다 도움을 준다. 이런 건 어때요? 저렇게도 해봐요 언니. 하면서 말이다. 어제는 그 후배와 동대문시장을 돌았다. 크리스마스준비를 너무 늦게 했어도 그 정도 효과가 있었으니 서둘러 설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덕분에 샘플용 포장재료 몇 개를 구입하고 광장시장에서 오랜만에 육회에 막걸리도 마시며 조촐한 송년회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카페 기준에서 오픈 후 가장 큰 이벤트였던 영화촬영은 사실상 소통의 오류로 물 건너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동생의 남자친구가 나서서 도와주셔서 카페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유일한 혈욱인 동생도 항상 잔소리로 들리긴 하지만 언제나 도움이 된다. 안정적이고 나간 멘털을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해줘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내 주변에 이렇게 고맙고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았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던 올 한 해였다. 가게 오픈준비하면서 혼자 힘들어했던 기억은 다 잊혀지고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안정되었으니 이제 조금씩 더 옆 사람들을 챙기고 보답해야 한다.
지나간 인연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나에게 채찍질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만 남아있다.
나의 2022년도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 정도면 올 한 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 한 해 받은 것들로 내년에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웰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