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지만 항상 그렇진 않아요
카페 오픈 초반에는 9시쯤 출근해서 디저트류를 만들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매장 청소도 끝낸 뒤 오픈을 했다. 그러면 11시 반 정도가 되고 30분 정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시간과 준비 시간을 가진 뒤 12시에 오픈을 했다. 더 일찍 열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오피스 상권도 아니고 완벽한 저녁형 인간인 나에게 더 일찍 준비하는 건 무리여서 욕심도 없고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오픈 시간이 늦다 보니 동네 아기 엄마들이 10시에 문을 열어줬으면 하셨다. 그래서 오픈 시간이 변경되었다. 출근은 똑같이 하지만 디저트를 만들면서 문을 열어둔다. 가끔 오븐에서 쿠키나 디저트류가 거의 다 구워짐과 동시에 손님이 오시면 오븐에서 쿠키를 꺼내지 못하고 음료 먼저 내어드린 뒤에 오븐을 열어보게 된다. 그럼 그 디저트들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정도로 까맣게 탄 채로 있었던 적도 있다. 디저트 만들기와 동시에 손님이 오시면 마음만 조급해지고 정신이 없다. 그래도 오전에 많은 손님이 오시는 게 아니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의 정신없음만 버티면 나름 괜찮다.
가끔은 오픈하자마자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아기 엄마들이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기와 함께 혼자 카페를 찾는다. 나의 인생선배(?)들이고 겪어보진 않았지만 친구들을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되니 왠지 뭔가 안쓰러운 마음이 살짝 들 때도 있다. 자주 오시는 분 중에 아기를 데리고 오시는 분이 있는데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디저트 하나를 주문해 주신다. 아메리카노를 내어드리고 나면 첫 모금 마실 때 '캬아-'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내 커피까지 내리게 된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맛있게 드셔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또 다른 분은 아기와 함께 오셔서 바닐라 라테와 디저트를 드시고 아기가 우는 바람에 급하게 포장을 해가셨다. 그리고 그다음에도 한번 더 들르셔서 지난번에 마신 바닐라 라테가 너무 맛있어서 아기 재워놓고 나오셨다며 급하게 주문을 하셨다. 배달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배달을 시작하고 알려드렸더니 배달로 바닐라 라테를 주문하셨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바닐라 라테의 레시피가 바뀌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뀐 레시피와 함께 원래 레시피인 바닐라 라테를 같이 보내드렸었다. 배달앱 후기에는 별 다섯 개와 칭찬의 후기가 올라왔고 이렇게 장사하시면 어떡하냐고 하시며 사장님 같은 분 처음 뵌다며 고마워하셨다. 그 뒤로 그분께는 디저트류중에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만들어드리기도 했다.
오픈 한 달도 안 된 12월 말의 일요일 마감시간이었다. 월요일 휴무이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은 모든 체력이 다 소진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진된 에너지와 함께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바닐라 라테를 주문하셨던 고객님이 오셨다. 작은 봉투에 선물이라면서 주고 가셨다. 취향이 어떨지 몰라서 본인 마음대로 고르셨다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잘 쓰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예쁜 포장을 해서 장바구니를 주고 가셨다. 그날의 기록은 개인 인스타에 '내 보물' 이라며 남겨놓았었다.
가게 시작하기 전보다 나태해지고 게을러져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겨우 두 달도 안된 가게에 손님이 고맙다고 선물을 주고 가셨다고. 퇴사 후 그날까지 쉰 적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장바구니 하나로 눈물을 흘릴뻔했다.
모든 지인들이 하나같이 나는 서비스직은 못할 거라는 소리를 했었는데 그날은 역시 서비스직이 천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날이다. 요즘도 가끔 와주시는데 그사이 아기는 많이 컸고 고객님은 복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못 오는 것에 미안해하셨다.
그리고 옆집 아저씨 부부는 주말농장에서 수확했다고 하시며 상추랑 깻잎, 고구마 줄기도 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있는 카페가 즐겁고 재미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