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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o Nov 14. 2024

조율사 A의 히스테리 #2

조율사 A : “빨리빨리 해! 그렇게 느려터져 가지고 언제 88개를 돌려!”

나 : “네.. 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구조의 것을 보며 생전 처음 보는 도구를 들고 흡사 응급실에 이제 막 출근한 인턴처럼 정신없이 쫓겨지고 있었다. 이 피아노중환자실에서.


그는 건반을 하나 턱 뽑더니

조율사 A : “내가 또 하나 알려주지.. 이게 뭔지 아나?”

나 : “모릅니다. 건반..?”


뽑아낸 기다란 흰건반을 돌려 밑바닥을 보여주며


조율사 A : “여기에 빨간 펠트가 보이지? 여길 롱노즈~알지? 이렇게 길쭉하게 생긴 펜치 말이야~”

나 : “아 롱노즈.. 네!”

조율사 A : “이걸로 한번 집어서 꾹 눌러줘~ 이르케 이르케~”


롱노즈로 눌러준 건반을 원위치시키고 연신 그 건반을 눌러본다


조율사 A : “자 봐~ 이제 안 뻑뻑하지? 너무 뻑뻑해도 안되고 너무 부드러워도 안돼! 내가 또 하나 알려줬다? 이 정도는 스스로 하라는 말이야! 왠지 알아?”

나 : (몰라)

조율사 A : “내가 이러고 집에 가면 다음날, 그다음 날 또 연락 와서 건반이 어째요 저째요~ 징징대는 게 싫단 말이야!”


이 조율사 A는 그동안의 세월을 통해 쌓아 온 모든 스트레스와 삶의 고통이 응축된 에너지를 나에게 쏟아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받아줄 만해 보이니까 나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잠깐 딴 얘기를 좀 하면 나에겐 이상한(?) 기운 같은 게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자신의 인생사를 토로하는 일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많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다 하네" "당신은 알아줄 것 같아!" 같은 류의 대사는 인생에 자주 듣는 이야기다.

뭐 그런 건 여기까지만 하고..


뻑뻑한 건반들을 이 잡듯이 골라내 응급수술을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너무 많이(반음) 떨어져서 급히 올려놓은 88개의 건반으로.


조율사 A : "아휴 씨.. 이거 봐.. 어? 다 떨어져 있지 또?"

다시 반복이다. 200개가 넘는 튜닝핀에 해머를 꽂고 어쩌고~하는 작업이.


울다가 웃다가 오락가락하는 조율사 A를 어느새 닮아버린 나는 이 강제수업이 흥미롭다가도,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나?" "나는 왜 혼나고 있나?" "더 좋은 기술을 알려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고장 내는 사람

무언가를 고쳐내는 사람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보기에 어떤데?)

고쳐내는 쪽의 사람이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고장 난 무엇을 봐도 겁먹지 않는다. 내가 고쳐낼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지식으로 고쳐낸 적은 없다.


고장이 나면?

1. 연다

2. 본다

3. 만져본다

4. 이리저리

5. 닫는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 때린다도 있습니다. (사람 아님)


이런 프로세스로 많은 것들을 고쳐왔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어떤 생각들이 요동친다.


피아노 조율사라는 것..

흐트러진 것을 바르게 한다..? 죽은 것을 살린다..?

내가 의사는 못되어도 피아노의사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니.. 해야 한다는,

더 이상 욕먹기 싫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건방져)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나도 세 시간이면 조율사가 되고 싶어 진다.


참고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 인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강렬하게 확신이 드는 일은 잘 없는 것이다.


약 세 시간에 걸친 한숨과 수술의 시간.

난 나름대로 훌륭한 욕받이와 조수가 되어있었다.

공짜로 그 역할을 해준 것은 아니다.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던진 그의 마지막 말은


"자기, 오늘 수고했어"



나, 피아노 조율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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