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24년 3월 21일.
사실상 이 이야기의 역사가 시작되게 된 계기의 날.
중고장터에서 저렴하게 올라온 피아노를 구입하게 된 순간부터였다.
일반의 소비자가 중고피아노를 구입하게 되는 경로는 대충 두 가지이다. xx마켓, xx나라 등의 개인매물을 구입하고 사설운반을 이용하거나 중고피아노업체(운반, 조율)를 이용하는 것.
보통 피아노 조율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엔 중고 피아노를 헐값에 매입해서 유지 보수 후 공급하는 일을 병행하는 조율사들이 있다. (이쪽이야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면 그만이라 그땐 그런 정보들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자신들의 일거리를 자신들이 만드는 그런 시스템이랄까? 피아노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사람들의 피아노를 매입해서 다른 수요층에게 공급하고 그 수요층들은 자연스레 그 공급자에게 향후 조율이나 조정, 수리 등을 맡기게 될 테니 이거야말로 이쪽 세계의 창조경제인 것이다.
각설하고, 중고장터 판매자에게 피아노를 구입하겠다고 연락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실물로 피아노를 보고 상태도 체크하고 결정하는 것이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판매자에게 “상태는 어떤가요? 몇 시에 시간이 되시나요? 조율은 언제 마지막으로 하셨나요?” 같은 뻔한 질문들을 던졌고 그에게 돌아온 대답 또한 역시 “상태 좋습니다” “몇 시에 가능합니다” “조율한 지 1년도 안되었습니다”였다. 아~ 적당히 괜찮으면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다가 조율하면 되겠지~(무지하고 무식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피아노용달과 조율을 동시에 하는 듯한 업자(중고피아노업체)를 인터넷에 검색 후 연락을 취했다. 가져오는 곳(판매자)의 층, 계단 상황과 피아노의 상태, 그리고 가져오려는 쪽(구매자, 나)의 층, 계단 상황을 고지하고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운반비와 조율비 견적이 합 17만 원이라고 언질 했다. 이쪽저쪽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을 끝내고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그 일을.
판매자 측으로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판매자 : "지금 용달하시는 분들 도착했습니다~ xxx-xxx-xxxxx oo은행으로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피아노의 중고 결제대금이었다.
나 : "네 지금 입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 20분 후, 피아노 업체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용달업체 : "사장님 여기 앞에 도착했어요~ 어디로 들어가는 거예요?”
나 : "네 지하 1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거구의 중년 남성 2, 그리고 빼빼 마른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 남성 1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사실 그전에도 몇 번의 피아노 운반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좋은 경험인 적은 없었다. 그들은 늘 화가 나있으며 불평불만이 많아 보였다. 모든 것을 트집 잡기 일쑤였으며 단 한 번도 예정된 가격과 같은 값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흡사 함 사세요~ 함진아비처럼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떠나겠다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두 사람의 용달업체 남성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피아노가 들어갈 방과 자신들이 지나갈 계단, 턱등을 관찰하며 동선 플랜을 짜는 듯 보였다. 계단도 돈이고 턱도 돈인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잔뜩 긴장을 품고 그들이 또 얼마의 추가요금을 부를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운반을 마치고 "예~! 잘해드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쿨한 인사를 하곤 두 남성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계속해서 심기가 불편해 보이던 정체를 모르겠는 그 남자만이 남았다.
지금부터 그를 조율사 A라고 칭하겠다.
30대의 어느 봄, 나는 지금 그를 만난 것이다.
온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표정, 연신 짜증과 불안과 불만을 가득 안고 바닥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를 말이다.
운반된 피아노를 땡땡 쳐보며 피아노의 상태를 확인하던 그 남자.
울먹거리는 그가 나를 부른다.
조율사 A : “사장님~!”
나 : “네?”
조율사 A : “이거 피아노가.. 이게 이게.. 언제 조율한 거예요?”
나 : “아.. 제가 중고로 구매한 건데요 1년 안팎이라고 하시던데요~? 왜요?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요?”
조율사 A : “안 좋은 정도가 아니고 이거.. 아주 반음 이상이 떨어져 있다고!!”
반음? 반음이 왜? 반음 그거 도가 시가 됐다는 거 아니냐고?
그럼 얼만큼 떨어져 있어야 그 눈물을 그칠 건데? 아니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조율사 A : “1년 됐다고 하는 거 그거 다 뻥이야~! 반음이 떨어져 있어~! 이거는 최소 10년(?)은 안 했다고도 볼 수 있는 거야!”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반음이라는 게 강산이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는 한참 동안을 울먹거리며 신세한탄을 했다.
조율사 A : “이거는 한번 조율로는 어림도 없어~! 3번이고 4번이고 해야 된다고!”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 피아노를 들이고 트러블이 없던 날이 있던가? 올 것이 왔다.
예예.. 그러면 제가 어찌할까요 화만 내지 마시고 정답을 알려주세요.. 울지 마세요!
조율사 A : “이건 돈을 추가로 받아야 해~ 원래 이 정도는 3배 받아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에휴.. 용달이랑 조율까지 해서 얼마라 그랬어요 내가? 17만 원? 그러면 조율비 10만 원은 더 받아야 하는데 25만 원으로 맞춰줄 테니까 선택해~ 어쩔 거예요 빨리 말하세요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나 : “네 선생님 25만 원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그것에 승낙하자 그의 미간 주름의 개수가 줄어들었다.
조율사 A : “알았어요~ 내가! 잘해드릴게..! 에휴.."
"내가 이렇게 툴툴대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실력하나는 좋다고!”
나는 이렇게 괴로워하는 사람을 뒤로 두고 당신 할 일을 하세요라며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민이 많은 사람. 그의 옆에서 그의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늘어선 튜닝핀에 해머를 신경질적으로 꽂고선 그는 건반을 눌러보지도 않고 약 200개가 넘는 핀을 휙휙 돌리기 시작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조율사 A : “이게 뭔지 알아?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서 1차적으로 이렇게 일단 다 ~ 돌려버리는 거야! 이렇게 해도 음은 올라가지 않아! 이렇게 올려도 또 떨어진다고!”
나 : “우와~네~(뭔 소린지 모른다)”
돌리는 와중에도 혼잣말로 계속해서 쌍시옷소리가 들려온다.
“하.. 씨... 하...! 쯧”
나는 그의 울분을 위로해 주기 위해 옆에 서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원하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 내가 옆에 있어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줄까? 하지만 이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도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공구가방에는 생전 처음 본 다양한 공구들이 즐비했다. 범용적인 흔한 공구라기엔 너무 낯선, 피아노만을 위한 공구 같아 보였다.
그때 그가 나에게 송곳 같은 공구를 건네주었다.
조율사 A : “자 이걸 여기 구멍에 넣고 ~ 여기부터 저~기 까지 돌려”
나 : “아? 이걸요? 아 네!”
지금에서야 그것이 캡스턴 조정이란 것을 알게 됐지만 그때는 알 턱이 있나. 근데 얼만큼 돌리라고? 그냥 돌려? 아 나 그래도 기계 만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거절할 생각 없다고. 나는 호기심에 쌓여서
“아~ 이게 그러면 건반 높이? 수평 같은 걸 맞추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았다.
조율사 A : “물어보지 마!! 그냥 돌리라면 돌려!! 설명해 줄 시간 없으니까!?"
나 :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