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물처럼 맑아 숨길 마음조차 없어 보이고,
다른 하나는 베일처럼 자신만의 색을 두른 채
그 속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높이조차 다른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하나는 백치 같은 맑음이고,
다른 하나는 예민한 기질의 거품 낀 녀석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을 연결하는 순간만큼은
늘 조용히 숨을 고른다.
서늘한 결심처럼 단단한 투명함과
햇살의 숨결을 머금은 금빛이
한 잔 안에서 조용히 맞닿는 순간.
나는 이 만남을 오래전부터 주선해 오고 있었다.
소맥이란 결국 그런 술이다.
한쪽은 증류의 선명함으로 곧게 서고,
다른 한쪽은 발효의 결로 생기를 더한다.
잔을 채우는 일에는 늘 작은 의식이 따르고,
나는 어느 한쪽의 편도 들 수 없어
늘 동등한 비율에서 시작한다.
소주가 먼저 바닥에 자리를 잡고,
그 위로 맥주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숟가락으로 둔탁하게 회오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젓가락 두 짝으로 미세한 거품을 피워 올린다.
각자의 손끝에서 다른 결이 생기고,
그 결이 또 다른 맛을 만든다.
금빛이 잔벽을 타고 흐르고,
얇은 거품이 조용히 피어오른다.
탄산이 잔속에서 하얀 포말처럼 일렁이다 부서져 오르면
잔 속에 작은 바다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맑은 결의 강함이 거품의 예민함을 안정시키고,
거품의 생기가 맑음의 딱딱함을 풀어준다.
이 미묘한 불균형이
한 모금의 완벽한 균형을 만든다.
이 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
잔이 채워지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은근히 출렁이고,
둘이 맞닿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흩어졌던 마음도 잔 속에 안착한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늘 처음과 다르게 흘러간다.
함께하는 사람, 기분, 날씨, 잔의 크기까지
크고 작은 변수들이 모여 또 다른 맛을 낳는다.
정확한 공식 없이 어긋나고,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보며
인생도 결국 서로 다른 결을 조율하며 완성되는 법이란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잠잠히 저린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의 맛을 이루기까지
그토록 많은 조율과 양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럼에도 소맥은 한 번의 화합을 이뤄내면
명확한 맛을 낸다.
섞이면 시원해진다.
함께 있을 때만 살아나는 맛이 있음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다.
흔들리지 않으면 섞이지 않고,
움직임이 없으면 닿지 않고,
변화 없이는 새로움을 얻지 못한다.
잔을 기울이는 짧은 순간에도
삶의 조율과 우연의 화합을 배운다.
P.S. 주량은 소맥 서너 잔이면 충분하지만, 가끔 있는 자리에서 소맥 한 잔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좋아 이렇게 조심스레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