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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pr 29. 2017

여덟 단어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팀장님,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딱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자존을 선택하겠어. 이 세상에 중요한 가치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자존이 제일 기본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이게 있으면 어떤 상황에 처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p.15>

[본질]

여덟 단어의 첫머리인 '자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자존이 밑바탕에 배여 있어야 한다.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생을 대하는 첫 단어로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것의 중심에는 본질이 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살아가는지를 확실히 정의 내려놓아야만 본질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본질을 벗어난 지류만 좇게 된다면 삶의 길에 허송세월이라는 꼬리표만 더 붙이게 될 뿐이다.

[피카소 - The bull]

본질의 좋은 사례가, 피카소의 [The bull]이라는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이처럼 군더더기를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알곡은 모으고 쭉정이는 걸려내듯이, 버릴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버리는 것이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는 길임을 이해시켜 주는 작품이다. 눈속임에도 속지 말고, 항상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 쥐어짜고 걷어내고 빼 버리다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본질인지를 구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실패의 아픔도 핍박의 고통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 아픔과 고통이 미래의 우리를 제대로 서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현혹되지 말자!


[고전, Classic]

나이 듦과 마주할수록 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옛 선인의 추억이 담긴 글과 멜로디에 정감이 가기도 하지만, 이제는 외면의 소리에 자극받기보다는 내면의 울림에 감동받게 된다. 클래식 선율의 감동을 느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마음이 들려주는 속삭임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비견되기도 한다. 고전이라는 것은 수많은 작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극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동의 울림을 주는 작품들이다. 지금의 자극적이고 감미로운 것들에는 마음이 갈 뿐, 마음을 빼앗을 힘은 갖지 못한다. 마음이 가는 것과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고전의 매력은 시시때때로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다른 울림을 준다.

때로는 붉은 선율의 열정을,
때로는 푸른 하늘의 평안을,
때로는 포근히 감싸주는 위로를 선물해 준다.

최근에 클래식을 youtube를 통해 듣고 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라며 가족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평소 클래식을 듣던 내가 아니기에 연주되는 곡의 의미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작곡을 누가 했고 연주를 누가 했고 공연장소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살포시 눈을 감고 귀를 통해 온 몸이 들썩임을 즐긴다. 연주곡들이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으로 머리몸으로 날아든다. 그 나비에 의해 전달되는 날갯짓의 울림에 감동받게 될 뿐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매번 그냥 지나치던 곡들이 세상으로 떨어진 무심한 돌덩어리에 색채를 입히고 꽃씨를 뿌려 놓고 있다. 아마도 그 돌덩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일도 멀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현재]

"Seize the moment."
"Carpe diem"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삶은 순간의 힘이지 결코 경주가 될 수 없다"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라며 현재의 소중한 가치를 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순간의 행복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디딤돌이 될 터인데 말이다. 이 순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 때, 삶을 바라보는 가치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녀 보았지만 정작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지 않습니까?" <p.143)

현재를 보는 시야를 넓게 가지지 못한다면 봄을 찾아 헤매는 삶과 무엇이 다를까? 근심과 걱정의 삶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 때 봄 매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재를 사랑하라는 이 말에 행복으로 가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지금의 가치를 모르고 다가 올 미래만을 위해 산다면 언제나 행복은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 매번 돌아다니는 삶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에서 만족하며 기쁨의 찬양을 울릴 소소한 감사거리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삶이 감사함으로 넘칠 때 지금 이 순간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어리석음도 없다. 하물며 이 순간이 즐겁지 않으면서 미래를 즐겁게 만들려는 어리석음은 괘변일 뿐이다.

우리, 현재를 즐기자.
그 현재를 먼저 감사하면서 말이다.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에는 그만의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 담겨 있다. 그 방향이 지향점이 되어 그의 삶의 길을 인도해 나갈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살아갈 방향의 기준이 되는 단어들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단어들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게 만드는 단어일 수도 있고, 꽃길처럼 편안한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의 문턱에서 '문턱 증후군'에 휩싸이지 않고 나의 길을 열어가도록 힘차게 걷고 또 걸어가야겠다. 이 말과 함께 말이다.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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