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우는 이유는...

by 글 쓰는 나그네

블런치 작가 중 '질문술사'라는 분이 있다. 질문을 디자인하라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인정받기를 갈구한다. 그런데 '그 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없다. 답을 찾기 이전에 문제의 근원,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 인식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하지?' 라며 스스로에게 질책한다. 이들은 문제와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왜?라는 질문을 한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답을 찾는다. 그런데 답은 찾았는데 질문의 뿌리, 의문의 뿌리, 문제의 뿌리를 찾지 못했다면 그 답이 온전한 답일까? 온전한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의 여정이 필요한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질문에는 또 다른 장점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창조적인 머리를 쓴다는 점이다. 이성적인 좌뇌에만 머무르지 않고 감성적인 우뇌를 자극함으로써 다른 생각과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 좋은 질문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깊은 사색의 산고를 거치고 다양한 문화와 복잡한 현상들을 체험한 이들에게서 좋은 질문들이 창조된다. 때로는 단순한 의문이 촌철살인이 무게를 지닌 질문이 된다. 모두가 '관습이야, 습관이야, 불문율이야 그냥 이거는 원래부터 그래!' 라며 지나쳐 온 것들이 하나의 단순한 질문에 고개 떨구기도 한다. 그 질문 적절한 환경과 때가 받쳐줄 때 우리 사회는 한 발짝 진보해가는 것이다.


'질문하라!'

스스로에게 묻고 다른 이들에 물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때?'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토론이 만들어진다. 서로를 이기려는 토론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내는 토론이 되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온전한 질문만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어린 아들의 질문이 생각난다.

"엄마! 아기는 어디에서 나와요?"

순간 당황한 아내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한다.

"자궁문에서 나온단다"

"예? 자동문에서요?"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단순한 질문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전달하려니 대답이 힘들어졌다.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뿌리가 담긴 질문을 찾아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당신은 왜 사느냐?"라고 묻거든,

"질문하기 위해서 산다!"라고 말하라.

아기가 태어나면서 우는 이유는,

'왜? 나를 이곳으로 보냈나요?'

라는 첫 질문을 한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결국 그 아기가 평생을 걸쳐서 찾아야만 한다.


두드리고 찾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 그 두드림의 시작은 질문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찾으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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