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한 번 이라도, 손편지 꾹꾹 눌러 써 봤니?
어제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었다. 친구 어머니 모자를 가지고 가다 잃어버렸다는 톡이었다. 친구들이 함께 사 드려야 하니, 돈을 부쳐달라는 내용이었다. 일하다 톡을 받아보고 ‘이제는 별별 이유를 다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톡 내용을 보냈다.
“어떻게 할까?”
답신이 왔다.
“그냥 속아 줘. 때로는 내 입장에서 분명히 혼날 것 같은 데 부모님이 아무 말 없이 들어주실 때 감동해”
요즘 돈 달라는 이유가 부쩍 늘었다. 가끔은 묻지 않고 그냥 줄 때도 있지만,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 같아 브레이크를 한 번씩 건다. 친구 어머니 모자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도 안 간다. 돈을 받아내는 방법이 아직은 어리숙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마 PC방에 가거나 친구들끼리 맛있는 거 사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송금했다. 달라고 할 때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면서 송금하면 끝이다. 더 이상의 대답은 없다. 목적 달성을 했으니,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에게 베풂을 받고 난 이후의 자세가 중요함을 아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의 의미를 아들의 카톡 내용을 보며 확실히 느낀다.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요즘 방학이라 퇴근 후 아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 무슨 놀 거리가 그렇게 많은지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키 커야 한다며 농구하고, 다른 반에서 자기 반 축구 실력을 무시했다며 반 친구들과 축구 연습하고, PC방 갔다 밥 먹으러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사이 유일하게 하는 영어학원은 갈 뿐이지 성적은 점점 떨어져만 간다. ‘놀 수 있을 때 많이 놀아라. 언젠가는 네 길을 찾겠지’라는 긴 기다림의 희망의 끈만 붙들고 있다. 공부가 아니면 저렇게 좋아하는 운동으로 방향을 잡아나가면 뭐가 돼도 되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아들에게 문자 보냈다.
“언제 들어오니, 이제 들어올 때도 되지 않았니?”
“네. 집 앞이에요”
“알았다”
그러고 나서 50분 정도 있다 들어왔다. 집이 중국의 자금성 앞이라도 되나 보다. 집 앞이면 언제 올지 모른다. 기분 좋을 때면 현관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입에 따발 소총을 물고 들어온다. 오늘은 친구 어머니 모자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친구 모자인 줄 알고 가지고 있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 모자를 형이 가지고 갔다 잃어버려 많이 혼났다며 걱정하는 친구를 보며 자기들끼리 대책을 수립했고, 여기저기 들린 행로를 따라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친구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며 읽어 주었다. 편지는 아들이 직접 썼고, 전달은 호진이가 자기 어머니께 직접 했다고 한다.
호진이 어머니께!
안녕하세요. 어머니. 호진이 친구 여준서, 조현준, 채민석, 박건우입니다. 우선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희가 호진이 모자를 호진이에게 전해 주려다가 실수로 잃어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죄송해서 모자를 계속 찾아보며 주변에 계신 상인분들께 여쭤도 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너무 죄송한 마음에 책임을 지고자 똑같은 상품의 모자를 다시 구매하여 드리려고 여러 사이트와 나이키 매장을 찾아보았지만, 품절되고 구할 수 없다고 하여 진심으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너무 죄송해서 드리는 돈이니 꼭 받아주세요. ㅠㅠㅠ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저희가 책임지고, 잘 간수했어야 하는데 부족한 저희의 탓이니 호진이는 용서해 주세요.
저희가 돈 자체를 드리는 게 너무 성의 없어 보일 수 있으시겠지만, 저희가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니 용서해 주세요. 나중에는 좋은, 예쁜 소식으로 연락드릴 테니 앞으로 잘생긴 호진이와 좋은 친구 관계 이어가며 잘 지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여준서, 조현준, 채민석, 박건우 올림]
편지 낭독이 끝남과 동시에 박수를 쳤다. 진심을 담은 편지도 좋고, 안에 담긴 글의 내용도 좋았다. 또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믿지 못한 부모의 부끄러운 마음도 함께 담았다. ‘유니섹스’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빠의 모자가 아니라 엄마의 모자를 쓰고 다닌 것 자체가 이해가 어려웠다. 내 상식의 틀 안에서 아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꼰대 소리 들을만하다.
이 편지를 받고 호진이 어머니는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글씨 잘 썼다며 누가 썼는지도 물어보고, 아들 친구들이 전해 준 편지를 화장대 위에 세워 두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몇만 원의 모자 대신 진심이 담긴 따듯한 마음을 받으셨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그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는 과정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따듯한 마음엔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을 먹고사는 삶이 우리네 삶이다.
아들과 친구들이 위기를 대처해 가는 방법을 보며 순수한 그 마음에 감동했다. 친구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 용기를 낸 듯하다. 아이들이 사람 마음을 읽는 방법을 안다. 돌아가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처했다. 그런 측면에선 어른보다 낫다.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은 아직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어른 아이가 많은 이 시대에 아이들이 더 어른스럽다.
독일의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밤중에 계속 길을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이다.” 그렇다.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친구의 발소리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친구가 거의 전부다.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불평하지 못하는 고민을 친구와는 나눌 수 있다.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자연스럽게 가능한 일이다.
“만약 자네가 형이나 그 외 다른 인간관계를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아마도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걸세!”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친구 어머니 모자를 찾기 위해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던 친구들이 세상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서지 않기를 바란다. 이 세상은 승자와 패자만 있는 곳이 아니다. 서로를 연결해주는 친구가 존재한다. 그 친구가 있기에 세상은 살맛 나는 곳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조력자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그 버팀목이 당장은 부모이고 또한 친구이다.
다섯 명의 친구가 끊김 없는 우정의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호진이 모자(母子)를 위해 친구들이 어머니 모자를 찾는 과정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