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아빠, 서툰 남편

(질문) 너는 잘하는 게 있어?

by 글 쓰는 나그네

변기 커버와의 사투


포기한 지, 2년은 흐른 것 같다. 변기 커버, 정확하게 말하면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기고 간 비데 커버 고리가 한쪽만 파손되었다. 어떻게 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일반 커버가 아니라 비데라 맨 위 커버만 찾기도 힘들고 해서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치부하며 접었다. 그래서 큰 방 화장실에는 고장 난 변기 커버로 약 2년의 세월을 보냈다. 가끔 변기 세균에 대한 정보를 접하며 걱정만 하다 새로 돈 들여서 비데 하기도 그렇고 이사 가면 그뿐이니 참고 살자며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우연히 어제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무 불편하니 새 비데를 설치했으면 좋겠단다. 잠시 생각해 보자며 말을 아꼈다. 사실 임대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내의 카톡을 계기로 한 번 더 ‘변기 뚜껑 교체’라는 내용으로 검색하다 보니 우연히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해결한 블로거를 보게 되었다. 그때, 아하! 하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변기 커버가 맨 위 뚜껑만 별도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형으로 교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라고 조용한 외침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커버 연결고리에만 연연해 아둔하기만 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참 한심타! 라는 말을 연발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를 계기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함께 엄습해 왔다. 사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쪽팔림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실패에 대한 불안감과 쪽팔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못했다. 여하튼, d-day를 일찍 퇴근하는 금요일로 잡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변기 커버도 사이즈가 별도로 있다는 새로운 정보도 메모리 시키면서 변기 커버 교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드디어 d-day, 막상 가정용 공구함에서 드라이브를 끄집어내고, 변기 커버랑 딱 맞서니 갑자기 막막해졌다. 잠깐 잊고 있었던 일반용이 아닌 비데 커버라는 사실에 순간 정적이 흐르며 몸과 생각이 얼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그래! 전체를 통째로 분리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일반 커버 분리와 같은 방식으로 아래쪽 너트를 풀어보니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그래 되었다. 이거다라는 확신으로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분리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이것이 비데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케 해주는 수돗물을 연결해주는 배관 호스가 별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관 호스를 분리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물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래 밸브를 잠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밸브를 잠그고 호스 분리까지 성공했다. 내가 나를 보며 대견해 하며 더러워진 물을 내려보내기 위해 버튼을 누르니, 어찌 된 일인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이건 또 뭔 조화냐?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밸브를 잠가 버린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비데를 위해 추가로 설치된 밸브를 분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녹슬고 오래되어서 멍키스패너로 힘겹게 분리하고 재조립하고 재분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원례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에구에구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기 커버 분리작업이었다. 가장의 책무를 수행했다는 만족에 스스로 감동해 버린 나를 보며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홈플러스에서 아내와 함께 변기 커버를 구매해서 그다음은 쉽게 장착할 수 있었다. 분리 과정에서의 시행착오가 새로운 커버 부착에 도움이 되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


집이 오래되면 가정에 잔손 볼 일들이 많아진다. 각종 공구를 잘 다루며 가정의 맥가이버 역할을 하는 분들도 많고, 전구 교체 하나 힘들어하는 분도 많다. 아내가 남편의 존재를 가볍게 인식하는 계기도 집 안에서 남자의 역할에서 많이 구분된다. 아내가 못하는 역할을 남편이 대신해줄 때 신뢰가 생긴다. 공구를 들고 땀 흘리는 모습에서 남자다움이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그 아버지의 모습이 믿음과 신뢰의 증표가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도 잔손 볼 줄 몰랐다. 집안 곳곳 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다른 누군가를 불러왔다. 시골 인심이야 좋을 때여서 막걸리 한 사발이면 쉽게 도와주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나 또한 가정일에는 젬병이다. 변기 커버 하나 바꾸는데 2년의 시간이 흘렸으니 나도 대단하지만 기다려 준 아내는 더 대단하다.


서툰 아빠와 서툰 남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 해 보지 않은 일, 생소한 일이 닥치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가장이라는 멋모를 자존심은 있어서 다른 이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아빠의 손만 바라보지만, 이제는 그 손에 대한 기대는 많이 낮아진 상태이다. 그래도 서툴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30대엔 대충대충 넘어가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는 늘 Problem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Solution에 포커스를 둡니다.” 어릴 때 시력을 잃었지만, 피아노를 통해 29세에 버클리 음대 교수가 된 김치국 교수의 말이다. 문제에 집중하면 그 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 solution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내 안에 가진 장점은 많다. 그 장점을 끄집어내지 못했고 연결 짓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 앞에 주눅이 들게 된다. 문제에 당당히 맞서기보다 이제는 그 문제를 맞이하면 틀고 돌려서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밝게 비추게 하듯 그 틈이 작은 실마리를 열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중요하다. 분명히 회피하지 않고 틀고 돌리면 다른 방법이 나온다. 그 틈을 찾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맞서도록 노력해야 하며, 당연히 그 일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마흔이 넘고 나서부터는 잔손도 예전보단 잘 본다. 방마다 LED 등 교체도 마무리했고 화장실 각종 호스 및 환풍기 등 일상적인 것들은 직접 손보고 있다. 화장실 욕조도 설치했고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솔루션을 찾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맥가이버 실력을 갖춘 분들이 보면 우스운 수준이지만 하나씩 손때 묻히고 있다. 손때가 묻는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자라면서 아픈 딸의 모습, 아픈 아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의 손때가 묻었고 아내와의 다툼 속에서 부부의 손때가 묻었다. 때가 더럽기만 한 건 아니다. 손때에는 가족의 정이 묻어있다. 그러고 보면 손때는 사랑의 증표다.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흔적이 되었고 그 흔적이 때의 모양일 뿐이다. 마냥 서툰 아빠와 남편이었지만 덜 서툰 가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웃음에도 유머에도 사랑의 표현에도 여전히 서툴지만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뒤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산이 힘들어도 한 걸음씩 걸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가장의 역할도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서툰 만큼, 다소 부족한 만큼, 더 아빠답고, 더 살가운 남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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