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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pr 03. 2020

책에도 맛이 있다.


<책에도 맛이 있다>



 l 삶에 주어진 짐 l


세월의 시간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무겁다.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는 결코 볍지 않다.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나를 붙들지만  죽음의 경계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한 호흡 한 호흡 연명하며 붙들듯, 삶의 짐도 붙들고 있다. 이 짐은 배척하고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평생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친구가 되어 버렸다. 버리면 짐은 가벼워지겠지만 생명의 호흡은 그것으로 끝이다. 즉, 살아갈 이유가 그 짐 속에서 있다는 말이다. 


책맛 


책도 마찬가지이다. 

40대 이전에는 책이란 단어는 짐이었다. 바쁜 삶의 시간 안에 책이란 고상한 친구를 둘 여유가 없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단맛, 쓴맛, 짠맛 그리고 매운맛의 유혹 앞에서 책맛을 느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 들면 입맛도 변하듯 책맛도 변하기 시작했다. 맛을 모르던 내게 어린아이처럼 맛을 가르쳐주는 엄마는 없지만 다양한 책을 찍어 먹어보며 맛을 익히고 있다. 계절마다 온갖 향긋한 나물들이 입맛을 채우게 되는 것처럼 책도 각 시기마다 다른 맛으로 채운다. 읽는 마음에 따라 맛이 틀리다. 마음이 허기질 때는 인문서적으로 허기를 달래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때는 자기계발서를 통해 위안과 도전의 힘을 채운다. 또한 답답할 때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담아내는 에세이 서적에 빠지고, 누군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감성 풍부한 시집이 그리움을 반가움으로 채운다.  



l 김치 맛 l


김진섭의 <이야기 우리 문화>에서는 김치의 맛에 대한 유래를 전해 준다.  "김치가 오늘날과 같은 맛과 형태를 갖추게 된 시기는 조선 중엽 이후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김치에 고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이보다 앞선 16세기 말엽이지만 그 후 약 100여 년 이상 김치에 쓰지 않다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고추를 사용한 양념 제조술이 발달하면서 바야흐로 김치 요리에 대변혁이 시작된다."


맛의 결정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즐겨먹는 김치도 배추나 무의 신선도가 중요하지만 맛의 핵심은 그 안에 들어가는 양념이 결정한다. 그 양념의 핵심이 고추다. 배추가 고추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김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결정체도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거치는 자녀들에게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간섭하게 된다. '좋은 친구가 너의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그런 친구들을 만나느냐? 친구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되 가려서 만나야 한다.'며 유무언의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 말은 틀린 말도 바른말도 아니다. 내 자녀에 대한 걱정이 앞선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언이고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책에 제대로 맛 들이려면 읽는 방법에도 다양한 양념이 필요하다. 그저 읽기만 하는 바보가 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 지나고 나면 남겨진 게 없다. 가끔은 책 제목까지 생각이 나지 않고 생소하다. 도서관에서 1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빌려서 한참을 읽다 익숙한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익숙함보다 왜 이렇게 생소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는 방법에 변화를 주었다.  


l 더럽게 읽자! l


기본적인 책 읽는 방식은 '더럽게 읽자'이다. 깨끗하게 모셔두고 선물할 것도 아니고 또 선물을 한다고 해도 깨끗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책은 사실에 기반을 둔 지식 습득의 역할도 있지만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내용도 많다. 또한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전달하고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생각들에 밑줄 긋고 내 생각을 메모한다면 책의 가치도 올라간다. 저자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함께 어우러진 책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한다고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나 같으면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빌린 책

우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밑줄 긋고 생각을 메모할 수 없다. 그래서 포스트잇 플래그와 포스트잇 메모지를 활용한다. 책을 읽다 눈길이 머물고 마음에 감동이 있는 문장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메모지에 짧은 느낌을 남긴다. 그리고 그 주변에 붙여둔다. 책을 완독 한 이후엔, 플래그를 붙인 부분을 별도로 발췌해서 기록한다. 기록의 방식은 엑셀 문서를 활용해서 책 제목과 저자, 전체 간략 소개 및 내용별 플래그를 붙인 내용을 기록한다. 그 기록에 붙어있는 메모지의 내용도 함께 옮겨 적는다. 옮기면서 추가 내용이 생각나면 그대로 기록한다. 저자가 말한 내용의 인용이 아닌 내 생각이라는 것을 별도로 표시한다.

[ 책 속에서 마음에 감동을 받은 문장, 긋고 생각을 메모합니다 ]


구매한 책

최근엔 다시 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져서 가급적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구매한다. 정가의 30 ~ 70% 정도로 구매할 수 있어서 실용적이면서 누군가의 손 때 묻은 책이라 그런지 더 정겹다. 이렇게 구매한 책은 본격적인 채취를 남긴다. 읽다 구불구불한 밑줄도 긋고 필요하면 그곳에 그대로 기록도 하지만 가급적 메모지를 활용해서 느낌을 적고 붙여 놓는다. 또한 챕터가 끝나면 리갈 메모지를 활용해 전반적인 줄거리와 느낌을 남긴다. 매 챕터마다 이렇게 기록하진 않지만 남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만드는 것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잊어먹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만 다른 이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덧붙여 생각의 탑을 쌓는 효과는 있다.


[ 리갈메모지를 활용해서, 짧은 내용 정리 ]

이렇게 기록한 내용을 엑셀 문서를 활용해 저장해 둔다. 엑셀을 활용해 저장해 두는 이유는 언제든지 꺼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어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하면 글을 쓸 때 적절한 인용문을 발췌하기 쉽다.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발췌하기에 글에 더 애정이 간다.
 

[ 엑셀에 옮겨 적은 글귀 - 언제든 검색해서 사용 가능 ]


l 마무리 l


그리고 마무리는 리뷰가 되었 서평이 되었 아니면 짧은 기록이 되었던 남기면 기억의 창고에 소중히 저장된다. 나이 들면 친구가 그리워지듯, 좋은 문장이 그리워질 때 기록으로 남긴 글을 들여다보며 추억놀이도 하게 된다. 책을 통해 추억 놀이하는 것도 의외로 괜찮다. 쭉 읽어 보다 보면 내가 이때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라며 스스로 감동받고 감탄하기도 한다. 내가 내게 위로도 주고 힘도 되어 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책에서 찐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그 향을 통해 입맛을 돋우듯 책맛을 돋우게 한다.  
 
책에도 맛이 있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삶을 그 책과 함께 엮 가는가에 따라 맛의 깊이와 색이 달라지겠지만 어떤 맛이 되었던 책맛을 느끼게 된다면 삶의 깊이는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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