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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Jul 11. 2020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판사

ㅣ개인주의자 선언 


나도 이렇게 선언이라고 거창하게 한 번 선포해보고 싶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다른 누군가의 또 다른 선언 등... 대중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사상을 갖고 살아가고 있소'라고 선언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진보냐 보수냐의 갈림길에서 조차 상대와의 언쟁을 싫어해서 묵묵히 중도를 걷는 내 모습을 보며 집단주의의 부조리함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자로 독립 선언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자각해보게 된다.


조직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개인주의자라는 이름은 달갑지 않았다. 그 달갑지 않은 이름이 이 책을 통해서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주목하는 우리의 자화상의 민낯을 들추고 있다. 또한,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나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삶에 치중하며 살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개인으로 태어났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사회라는 공동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공동체라는 조직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처럼 내가 가진 권리를 주권자(국가)에게 양도해서 나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무언의 계약에 따랐다.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장으로 1부가 시작된다. 레고에는 여러 조각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나라는 유일한 조각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집단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레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임을 강조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집단에 묻혀 개인의 희생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조직 우선주의.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다.’ 나라는 개인을 약자로 만들어 국가나 회사에 귀속해서 도구로 사용했었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신봉하며 따른 것처럼.


저자인 문유석 판사는 자신이 법관으로 재판에 참여하며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산문형식으로 풀어놓았다. 법정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들은 법은 최소한의 양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불행한 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곁에 서다』라는 책에서 법에 대한 범위를 정해주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법이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권력자들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정의의 규범이어야 한다. 법이란 사회적 강자와 국가권력의 전횡과 폭력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의 방향이 사회적 약자를 향하는 순간 그것은 법을 빙자한 제도적 폭력일 뿐이다. “

  

’ 국가가 갖출 예의’라는 챕터에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재심 사건에 대해 다룬다. 국가가 권력의 힘으로 잘못 행사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또한, 공무원들은 그런 시민을 받들며 일해야 한다. 서비스 정신이 아니라 시민과의 약속이다. 최소한의 도리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 입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문 판사가 판결 이후 유족에게 직접 전화해 상세히 설명해 드렸던 것처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것이 국가의 위상을 키우는 일이고 시민을 위하는 일이고 국가 존재의 목적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개인주의자 선언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먼저 다른 이를 서로서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답게 잘 살기 위해서. 이것이 개인주의자의 삶의 지향점이 아닐까?


저자의 마지막 말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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