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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진짜 주인공은?

by 우창균

'공간이 중요합니다.' '공간이 어떻네요' '공간, 공간 ....'

많은 곳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의 접점에서 가장 흔하게는 길거리에 있는 상가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 공간에 예전에 카페가 있었는데, 지금은 올리브영이 쓰고 있네요~.'

'공간'이라는 단어를 일상 생활 속에서는 물리적인 '오프라인 공간', '인테리어 공간'에 한정지어서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종종 해외사와 업무를 하기 위해 번역을 하거나 리서치를 할 때면 항상 공간이라는 단어의 번역에 멈칫하게 됩니다.


'공간=Space'


단순하게 공간을 Space라 번역해 검색하게 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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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근사한 공간의 레퍼런스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리죠. 근사한 우주 배경을 찾았다면 모르겠지만요.


이처럼 '공간'을 말 그대로 직역하면 Space가 됩니다. (물론 이를 대체하는 단어가 있는건 저도 압니다..)

공간의 의미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간(空間) : 어떤 물체나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자리. 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범위나 영역.


의미 자체가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뜻' 을 내포하고 있죠?

공간에서 공은 '빌 공(空)'과 간은 '사이 간(間)' 한자를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사이가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공간'은 무언가 항상 차 있거나 표현되는 장소로 인식되다 보니, 오히려 '비어 있는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요. 어쩌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게 공간이기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심지어 불교에서도 '공간'이라는 뜻을 다양하게 풀이하고 명확한 정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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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만 정리해보면, 물리학적 공간은 물질이 존재하고 운동할 수 있는 3차원의 무대. 수학적 공간은 좌표와 규칙으로 정의되는 추성적 구조. 철학적 공간은 인간 인식의 전제 조건으로 사물이 존재한다고 느끼게 하는 틀. 불교적 공간은 실체가 없고 집착할 수 없는 상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어울리지도 않는 물리학, 철학을 들먹이냐고요? 여기까지 보셨다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의미가 생각보다 물리적이기도 하면서 철학적이기도 한 심오한 영역이라는 걸 이해하는데서부터 우리가 실제로 맞이하고, 지금부터 고민해봐야할 '공간'의 진짜 효용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 공간의 용도

이 중에서 다소 철학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 물리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공간의 활용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공간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 사용하는 공간. 두번째 사용하지 않는 공간.


쉽게 생각해서 길거리에 나가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분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특정 구획을 공간이라고 한다면, 누군가가 사용하는 공간이 존재하기도 하며 반대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길거리의 버스 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이면서도 작은 지붕으로 강렬한 햇빛이나 비로 부터 보호해 주는 공간입니다. 시야 밖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누군가에겐 등산 코스 공간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첫번째로 언급한 '사용하는 공간'은 결국 사용성이 있을때 공간의 존재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버스가 도착해야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기다려야 그 의미를 지닙니다. 뉴턴과 동시대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는


'공간은 사물 간의 관계일 뿐,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뉴턴과의 논쟁에서 공간, 시간과 물체의 운동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즉, 공간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정의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그 안에 존재하는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진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말 그대로 공간은 그저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무엇이 그 안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과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철학적, 과학적 의미의 공간에서도 공간 그 자체는 사용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과 철학을 운운하니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시죠? 그럼 버스정류장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잠시 돌아와볼까요?


가장 쉽게는 길거리에 붙어 있는 '공실' 안내판입니다. 비어있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임대 000-000-0000'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 사용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죠. 사실 당연한 사실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간, 즉 건축물은 사용성을 기반으로 구성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두번째에 후술하겠지만, 조각품이 아닌 이상, 그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건축물을 짓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창조한 물건은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이는 공간을 이루는 건축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 폭발적인 수요로 찍어내기만 해도 팔리던 시절에는 이 '사용성'이 조금 떨어져도 괜찮았습니다. 그냥 쓸만하면 사용할 수 있었죠. 비단 건축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핸드폰에는 안테나가 있었던거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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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로 돌출 되어 있던 안테나는 핸드폰의 상징과도 같았죠. 하지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안테나가 핸드폰 내부로 들어가게 되었고 (안테나가 사라진게 아닙니다.) 지금은 여러개의 안테나가 핸드폰 내장형이 되었죠. 이는 디자인적으로도 사용성 측면에서도 외부로 돌출된 안테나의 사용성을 개선한 것과 같죠. 버튼 방식에서 터치로 바뀐것도 마찬가지겠죠.

이렇듯 사용성이 일순위인 영역에서는 발전의 방향성이 '더 편리한 사용성'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어떨까요?


두번째 '사용하지 않는 공간' 은 과학적으론 어쩌면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경우라면 이는 조각품에 가깝습니다. 관상용이나 자연물에 가까운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공간과 인간 간의 벽을 없애고 사용하는 순간 다시 또 다른 개념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사용하지 않는 공간은 사실 공간이라기 보단 오브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공간이라는 것은 결국 '사용성'이 있을때 그 의미를 갖고 그만큼 사용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공간의 주인공


이제 공간은 사용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셨겠죠? 그럼 여기서부터 공간의 사용하는 주체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누가 주인공인가?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그 사용 주체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누군가 사용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전기 자동차를 만들어도 어떤 사람이 해당 브랜드의 전기 자동차를 탈것인지 생각하고 만들죠.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범주에서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오피스를 만든다. 그럼 당연히 오피스가 필요한 회사가 대상일 것이고, 그 오피스 내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정밀한 타겟이 됩니다. 호텔을 만든다면요? 당연히 호텔 기업이 대상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개발 단계에서부터 위탁운영이나 마스터리스 같은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 호텔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세부 타겟이 됩니다.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죠.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회사 그리고 그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서버나 자재 등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의 섹터가 나뉘는 기준이 됩니다. 오피스, 호텔, 리테일, 데이터센터 등이 상업용 부동산 큰 범주의 카테고리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주는 자동차를 만드냐, 비행기를 만드냐처럼 보다 더 넓은 범주에 해당됩니다. 이 아래의 단계들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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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호텔을 만든다고 해볼까요?

먼저 토지를 확보해야겠죠. 그리고 사업성을 따져가며 어느 정도 규모의 호텔을 만들 수 있는지 가늠해봐야 합니다. 설계를 해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몇개의 객실, 부대시설의 규모 이에 해당되는 호텔의 성급과 어떤 호텔사를 유치하고 계약할 수 있을지 등을 분석해야 합니다. 만약 '에이스 호텔'을 만들기로 했다고 가정 합시다. (지금은 한국에 에이스 호텔이 없으니 행복한 상상입니다.) 에이스 호텔은 로비의 커뮤니티 형태의 라운지가 유명하죠, 그리고 레스토랑과 루프탑, 각 객실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이때, 에이스 호텔을 찾는 사람들 예를 들어 트렌디하고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동선 계획과 각 요소별 인테리어적 아이템과 디테일, 콘텐츠 구성들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물리적인 건축물은 어떠한 구성을 갖추어야 할까요? 당연히 고객 동선에 맞춘 코어 구성, 층별 배치 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럼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호텔의 사용성' 입니다. 이때 사용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바로 호텔 기업의 운영에 용이한 사용성고객의 편리성에 맞춘 사용성입니다. 공간의 관점에서 사용자는 호텔 오퍼레이터와 컨슈머 두가지 관점이 공존하는것이죠.


여태까지 이러한 상품(호텔이나, 오피스 등)을 기획할때 통상적으로 B2B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을 개발하는 디벨로퍼, 시행사의 관점에서 소비자는 바로 호텔기업, 오피스 임차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략적인 '가정'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호텔과 같은 상품의 경우 부동산 개발 과정 전이나 직후에 호텔기업과 MOU, 위탁운영, 마스터리스 등의 계약을 체결하곤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실질적으로 향후 부동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해당 부동산의 가격과 연간 지불되는 임대료 수익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전에도 언급했던, 부동산 수익률, Cap rate의 원리로 부동산의 가치가 매겨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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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 한단계가 더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호텔을 운영하는 오너라면 어떤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결국 소비자입니다. 이용객이 있어야 호텔이 운영되고, OCC, ADR, RePAR 같은 수치들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오피스라면 오피스를 사용하는 회사와의 임대차계약도 중요하지만, 그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이 결국 실질적인 사용자가 됩니다. 그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겪는다면 분명 오피스 사용에 지속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류센터나 데이터센터의 관점도 유사합니다. 쿠팡이 되었든 아마존이 되었든 각 회사들이 해당 상업용부동산을 계약해 사용하겠지만, 결국 그 속에서 향후 운영성을 평가하고 경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물론 로봇도 있겠네요.)


부동산을 사용하는 회사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국 그 속에서 근무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실제 상업용부동산, 공간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을 사용하고 결정하며 그에 걸맞는 공간과 부동산이 존재해야 양립할 수 있는 구성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공간을 만들더라도 사용성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지속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공간은 결국 사용률이 떨어지고, 경쟁에서 뒤쳐지며, 결국은 공실로, 버려지는 공(0)간이 되겠죠.



3. 사람과 콘텐츠


그럼 '공간은 결국 사람이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주인공은 사람, 소비자다' 라는 말에는 공감하시겠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할 부분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콘텐츠'에 관한 관점입니다.


사실 상업용부동산을 개발할때 어떤 상품으로 만들 것인지는 이미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콘텐츠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죠. 오피스, 호텔, 데이터센터, 리테일, 물류창고 등 각 섹터별로 사업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고 법규 검토, 설계, 시공 등 모든 것들이 천차만별이죠. 하지만 그 관점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가 바로 '사람'이 주인공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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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거죠.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회사는 고객이 자동차 회사일까요? 맞습니다. 자동차 엔진을 구매해주는 자동차 회사가 고객입니다. 하지만 만약 관점을 그 자동차를 타는 소비자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때 상품의 범주가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드는 엔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다룰 것인지를 생각하고 만드는 것과 자동차 회사들이 좋아할 상품을 만드는 것은 분명 방향성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떠한 것이 정답이다. 라는 이야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이 모든 것들이 '포화'인 시대에 나의 상품이 사용되는 '사용성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사용자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상품이자 브랜드를 경쟁력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향성이 아닐까요?


결국 공간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무엇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움을 채우는 주인공'은 콘텐츠이며,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부동산,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을 설계하고 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경험하게 할지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그들은 이 공간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

공간의 진짜 주인은 콘텐츠이며, 콘텐츠랑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입니다.

'콘텐츠 없는 공간은 곧 공실이고, 사람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동산이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콘텐츠는 늘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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