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버지의 칠순이었다.
가족끼리 식당에 모여 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있어서 아주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딱 가족 모임다운 풍경이었다. 덕분에 자리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로 채워졌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과묵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많았고 잔소리도 심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술자리를 더 좋아했고, 집에 있을 때면 늘 무언가를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속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기보단, 그저 피곤하고 부담스럽게만 느꼈다.
우리 집에도 'IMF'라는 시절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그 시기를 지나며 집안 형편은 눈에 띄게 기울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생활은 팍팍해졌다. 그 후 몇 년간 아버지는 일을 놓았고, 방문을 닫은 채 세상과 거리를 두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가족의 최전선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묵묵히 집을 지켜냈다. 무너질 듯한 중심을 가까스로 붙들며 아이들을 챙기고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때 나는 그 상황 안에 있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안다. 어머니에게 그날들이 얼마나 버거운 시간이었을지.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는 다시 일어섰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술을 완전히 끊은 것도, 말수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이미 늦었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종종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제일 중요한 시기에 내가 일을 안 해서, 너희를 참 힘들게 했다.”
변명도, 스스로를 감싸려는 기색도 없는, 그저 지나온 시간을 인정하는 사람의 말투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때 아빠가 그래서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잘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완벽한 위로도, 명쾌한 결론도 아니다. 다만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도, 그 시간이 지금의 우리를 망친 것은 아니라는 우리 나름의 대답이다.
대화는 늘 거기서 멈춘다.
더 깊이 파고들지도,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미안함을 안고 있고,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이 서로를 밀어내지는 않는다.
식탁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도 처음부터 부모는 아니었다는 사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채 책임을 떠안았던 한 사람. 우리는 오랫동안 그를 ‘아버지’라는 역할로만 바라봤지만, 그 역시 숱한 실수와 후회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날의 식사는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한자리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위에 지금의 시간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삶을 놓지 않았고, 늦게나마 자기 몫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은 채 다시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답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