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삶의 기준을 자주 바꿔가며 살았다.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늘 유동적이었고,
그때그때 마주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기준은 쉽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앞서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자주 내 위치를 다시 계산했다.
기준이 밖에 있을 때의 삶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어제는 괜찮다고 여겼던 선택이
오늘은 갑자기 부족해 보이고,
남의 확신 앞에서
내 결정은 쉽게 흔들린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누군가의 속도에 의해 평가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남의 기준으로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방향을 잃는다는 건
크게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를 자주 놓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삶의 기준은
대단한 결심이나 선언에서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췄다.
무리한 선택을 한 날의 피로감,
괜히 비교하다 망가진 하루의 기분,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아, 나는 이런 방식으로는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때부터 기준은 달라졌다.
얼마나 더 가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나를 지킬 수 있느냐로.
물론 앞으로도
남의 기준을 의식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생각만큼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당장은 눈에 띄지 않아도
스스로를 소진시키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마음.
기준이 생기면 삶의 밀도도 달라진다.
모든 선택이 정답일 필요는 없어지고,
대신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힘이 남아 있는지,
그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요즘은 삶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묻기보다
이 삶이 나에게 무리가 되지는 않는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버겁지 않은 하루,
조금 부족해도 마음이 닳지 않는 하루.
그런 날들이 쌓이면
결국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삶의 기준을 잡는다는 건
나를 더 몰아붙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돌아와 쉴 수 있는 지점을
마음속에 만들어두는 일 같다.
그 기준이 단단할수록 삶은 조금 느려져도
덜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