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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30. 2020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큼  
진지하지 않다

타인과 상대할 때 그들이 나 자신만큼 진지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안다.


통화 중에 상대가 딴짓하는 것도 말하다 보면 바로 알고, 대면해서 상대의 태도나 말투를 보면 금방 느낀다. 여기서 하나는 내가 나에게 너무 몰입해서 내 생각만 말해 그가 무심해지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내 말에 관계없이 상대가 내 대화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다.


친구는 사업으로 나름 성공했다. 내 사업구상의 내용을 그에게 브리핑하면 그는 말없이 경청하다 질문한다. "그다음은?" "자금은 어떻게 모을 건데?" "결론이 뭔데?" 그가 투자자처럼 들어준다 하지만 핵심은, 내 말이 그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친구는 바이오 쪽에 투자를 해서 내 일에 관심은 없다.  "사업은 돈이 꽂힌 다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의 결론은 우리 회사 수익성에 의심이 가고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을 살리는 사업인데 돈 냄새만 나면 되나?




법인 사업자에게 한해를 결산하는 법인세 보고는 어렵다. 그동안 지인에게 소개받은 마음씨 좋은 회계사에게 부탁해서 무료로 처리하다 올해는 도무지 미안해서 혼자 해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가 등장한다. 아니 용어 자체를 모르겠다. 한국 말이 왜 이리 어려운지 뜻을 알고 나면 회계 지식이 필요한데 나는 전공이 아니다. 하는 수없이 이제 좋은 회계사를 수소문했다. 운 좋게 연락이 닿은 세무사 한 명을 찾았다.


전화부터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이런 친절과 진지함은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움이다. 난 원래부터 사람을 한 번 보고 첫인상에 결정을 많이 내리며 살아왔다, 그 덕분에 배운 "참 교육"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슬픈 결론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개나 믿으라는 건가? 미국은 좀 다르다. 우리처럼 인맥이나 정으로 일하지 않고 객관적이다. 미국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을 비교하자면 한마디로 한국 아이들은 좀 영악하달까? 미국 아이들은 좀 순진하다. 이건 또 스테레오 타입(하나를 보고 전부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뭘까?

"서양 사람은 좀 단순하고 동양사람은 좀 복잡하다"가 최선의 표현 같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세무사와 회사 업무를 전화로 위탁하고 내 성격상 그를 만나고 싶었다. 내 성격이란 다름 아닌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을 좋아하는 것이 구시대 습성인지 몰라도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사귀며 알아가는 것이 그냥 좋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 중에 하나는 괜찮은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다.


메마른 전화기 너머의 교환원은 질색이다. 더 힘든 것은 AI 시스템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아직 한참 부족한 기계들이 세상을 점점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하이, 젝시" (영화 Her의 코미디 버전이라 생각한다)는 코로나로 답답한 하룻밤을 잠깐 깔깔거리게 만들어줄 영화다. 기계 음성들에게 식상한 나는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는 것을 즐긴다. 그중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나면 비록 그가 다듬어지지 않아도 보는 것 만으로 즐겁다. 나는 또 대체적으로 여성 전문가를 선호한다. 여자를 좋아하기보다 그들은 남자보다 섬세하고 상대하기 편하다. 또한 남자보다 더 전문적인 경우도 많다. (지금 내가 만난 세무사는 남자다)


시간이 없다고 일찍 약속하는 바람에 아침의 루틴이 다 깨진 하루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마스크 챙기고 만원 좌석 버스에 올라 강남에 도착했다. 사무실을 열고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월세가 비싸 보이는 그곳엔 흔한 풍경 여직원이 한 명도 없다. 빈 책상과 음료 테이블 세련되지 못한 실내풍경은 업체의 주인이 소탈하거나 사무실을 꾸미는 일에는 고민이 없어 보인다. "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아 네, 어서 오세요" 그가 저쪽 방에서 나왔다. 전화 너머로 업무를 나누던 그는 뽀샵 사진보다 실물이 더 좋았다. 물론 이 좋음은 친절한 전화 속 목소리와 우리 아들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녔던 서울의 명문대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일지 모른다. 업무를 진행했다. "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이렇고 저렇고 그런 거죠" " 아, 잘 알겠습니다 " 이 친구 업무도 스마트하게 처리한다. 간단하게 업무 핵심사항이 정리되고 진지하게 상담을 마쳤다.


" 혹시 브런치라고 아세요?"


그가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해서,

자기를 알리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내 말을 경청할 때 물었다.


 " 아, 브런치 압니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


" 아니요 먹는 게 아니라, '아마-프로' 작가들의 공간입니다"

(내가 만든 말이다, 아마추어 프로페셔널 , 훗 어색한데 한국에서는 다 줄이고 붙이면 말이 되니 배웠다)


한참 동안 브런치 홍보를 하고 앉았다. 이어 내자랑도 했다.  " 흠, 저도 브런치 작가입니다 " 

거기에 덧붙여 여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작가로서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랑질했다. 마치 내가 글 깨나 쓰는 것처럼 포장해서.


" 아, 저는 작가 수준 아니고 그냥 일기처럼 씁니다" 

  ("브런치에도 일기 많아요" 하려다 또 참았다)


" 감사합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약속대로 30분 정도 만나고 그와 헤어졌다.

 

사업체의 세무 고민을 그가 순식간에 해결해 주었다.

(착한 정보라 공유하는데 그는 고대철 세무사 '세무그룹 모든' 서울 서초동 02-522-2402에서 일한다)

 

사람들은 업무든 친분으로 만나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경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태생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진심을 담아 글을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진정성을 갖는 일은 사실 어렵지 않다. 마음을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그 마음에 상대를 배려하는 생각을 담아 전하면 된다. 자기를 사랑하고 그만큼 타인도 사랑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동족을 위해 값진 일인지 모른다.




어제 미국인 네 명이 마스크 안 쓰고 버스를 같이 탔다. 법적으로 내 나라 사람인데 

"노 마스크"가 불편했다. 여기선 한쿡사람, 미국서 미쿡사람 황금박쥐 같은 나도 내가 불편하다.


지당하신 어머니 말씀,  "한국에서는 마스크 안 쓰면 싫어해" 때문에.

마스크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동시에 표현하는 별난 역설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정직하면 함께 이익이 되는 것 매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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