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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Sep 19. 2020

이발사 지코

열정과 몰입

약속시간 다 되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시카고 도시 외곽까지 해가 중천에 떠 올라도 오픈 안 한 것 보면 게으른 주인 문제 거나 코로나에 손님이 없어서 " 망하는 중 " 일지 모른다.

문 앞에 기다린 지 한참 뒤 키 작은 히스패닉 hispanic 한 사람이 건너편 도로에
고급차를 주차하고 나타났다.
" 여기 온 거니?"  "응, 예약하고 왔는데 아무도 없네"
" 혹시 9시 30분 예약한 사람, 너야?"
"맞아"
"미안해, 어서 들어와 빨리 준비할게"

그는 분주하게 우당탕 소리를 가지고 미용실 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하나 같이 손재주가 젬뱅이 인 미국 미용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 머물 때는 맘에 꼭 드는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 유미를 알게 되어 정말 머리를 잘 관리했다. 말도 잘하고 친절하고 사려 깊었다. 그래서 미용실 다녀오면 일주일은 거울에 등장한 연예인 같은 내 머리 보면서 즐겁게 지냈다. 미국은 미용강국 한국처럼 호사 누리기 쉽지 않을 것 같아(물론 한인타운에 가면 한인 미용사가 있지만 너무 멀고 )  미국 미용실 문을 두드린 것인데 오늘 이렇다.      


준비를 마친 그가 자기 이름은 지코라고 소개하며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 건지 묻는다. 마스크 쓰고 미용실 처음 와 보는데 "마스크 벗을까?" "노" 마스크 쓴 채 머리 한다고? 처음엔 속으로 비웃다가 옆머리 자를 때 마스크 줄 들어 올리는 것 보고 " 아, 다 계획이 있었구나"(요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나는 마스크 벗고 미용사만 쓰고 해서). 그는 오늘 내가 처음이라 사진 가지고 설명하는 헤어 스타일을 열심히 듣고 잘 이해했다. (물론 사진은 나 닮은 송중기 헤어스타일로), " 내 젊을 때 모습"이라 농을 던졌는데 진짜 믿는 건지 그의 표정은 시무룩, 무뚝뚝하다.


그가 신중하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자 점점 진지한 그의 머리 자르는 모습이 사뭇 비범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미용실 첫인상과 이발사 지코가 비호감이라 오늘만 자르고 다시는 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소독제로 의자를 박박 문질러 닦고 이발기구 하나씩 점검하며 주변을 정리할 땐 내가 좋아하는 완벽주의자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벽에 붙여진 낡은 포스터는 그가 메이크업 강사임을 알려 주었다. 머리 자르는 도중 눈동자 굴려 가며 구경하다 그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한참 몰입하여 내 머리 정리를 마칠 무렵 백인 여직원 한 명이 느지막이 출근한다.  이어 히스패닉 손님 하나가 들어오자 지코는 역시 무뚝뚝하게 뭐라 뭐라 스페인어로 지껄인다. 마침내 한참 동안 내 머리를 다 자르자 그는 자기 명함을 건네주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돈 받는 시간) 나는 팁을 두둑이 주었다.  그는 아까와 달리  차갑지 않게 반색하며 고맙다고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다.  




보통 미용실 나설 때 기분과 느낌은 그날 미용사의 실력이다.   그날 기분이 뭐였더라? " 아주 좋아"였다.

집과 가까운 거리라 걸어가면서 그 느낌을 즐겼다. 코로나로 텅 빈 낡은 상점의 불만보다 유리창에 유령처럼 비친 내 모습이 만족스럽다.


가족들은 어디서 한 거냐고 모두들 성화였다. 아들 친구는 놀러 왔다가 자못 심각하게 묻는다.  " 한국 미용실 가셨어요?" "아니, 그냥 미국 미용실~" " 대박~, 얼마예요?"  "위치가 어디예요? 저도 거기서 할래요"  원래 머리 손질하고 나서 미용실을 나올 때 기분과 내 머리 처음 본 사람들 반응이 머리 기분의 한 달을 지배한다.


이발사 지코를 만나고 왜 기분이 좋아졌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머리를 잘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공군에 근무할 때 당직 서는날 Alert Room에 가끔 놀러 갔다. 친구가  비상 대기하는 날 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라면도 얻어먹고 장기도 두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대기실은 아늑하고 근무 중인 조종사들은 출동에 대비한 복장을 갖춘 채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이야, 장군 받으시오"내 앞에서 친구 전 대위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자기 장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출동 신호가 요란하게 울렸다. 친구는 급히 일어서며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 다녀올 때까지 말 옮기지 말고, 가지 말고, 기다려" 헛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녀석 긴장된 이 순간에도 농담은. 밤에 들어선 시간이라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으며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 세계에서 알라트 룸 Alert room 비상대기 이륙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 대한민국은 그렇게 분주하지만 질서 있고 잘 훈련된 모습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항공기 옆에서 친구가 떠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권총을 차고 무장한 항공기에 탑승하면서 임무에 몰입해 있었다. 만약 비상출동이 실제상황으로 발전하면 그는 정해진대로 평양을 폭격할 수도 있고 적과 공중전을 벌일 수도 있다. 한번 떠나면 마지막 일지도 모를 비장한 순간, 단 몇 분 만에 생사를 가름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가 비로소 캐노피 밖으로 모두를 쳐다본다.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녀오면 "장군 받아라" 하고 싶은 듯 엄지 손가락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마지막 경례를 힘차게 했다.


나는 그 순간 온몸이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남자가 남자를 보며 "저렇게 섹시할 수가?" 정말 멋있었다. 물론 차렷 자세로 그를 바라보는 정비인원들도 멋있었다. 비장함? 사내다움? 임무에  몰입하는 열정? 복합적이지만 나는 그 순간을 특별히 기억했다.


항공기는 서서히 주기장을 벗어나 활주로 끝에서 부터 굉음을 토하며 전력 질주했다. 파란 불빛 한 줌을 꼬리에 달고 인생 마지막 일지 모를 어둠 속으로 그는 날아 들어갔다.



지코가 그랬다. 진지하게 머리 자를 때, 문득 친구의 야간 비행이 떠올랐다. 남자가 일에 몰두하는 모습, 그 짧은 순간의 교감은 그가 사람을 위해 진실하게 임하고 있는 확신이었다. 나를 "스치는 사물"로 본 것이 아니라 "소중한 타자"로 인식하고 자기 탤런트 talent를 타인에게 나누는 느낌이었다. 그의 열정과 몰입은 프로페셔널 professional의 오랜 내공과 삶의 태도 일지 모른다.


가끔은  더럽고 게으른 사람을 본다. 

이런 사람은 결혼해도 안되고 혼자 살기도 힘들다. 자기가 헝클어 놓은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는 것은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게을러서 그렇다. 그런 삶은 앞으로 점점 무능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한 돌처럼 굳어지겠지. 이런 사람과 결혼하거나 하우스메이트 Housemate가 되면 공동공간은 쓰레기통이 된다. 그의 마음도 쓰레기 통이라 오물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는 먼저 고장 난 속 마음부터 정리하고 밖을 치워야 한다.  매사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조상의 경험치는 오차가 없다.

지코의  부지런 하고 집중하는 습관이 게으름을 이겨낸  승자의 내공 열쇠 일지 모른다.




"오빠, 열 받아 죽겠어." 오랜만에 장거리 통화를 시작한 여동생님이 시작부터 짜증이다.


"왜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 아니 뒷목이 너무 아파서 신경과 의원에 갔는데 의사가 대충대충 하는 거야.  검사도 안 하고 대충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로 보인데. 그러고는 약을 뭘 쓰냐고 물었더니, 진통제 처방한데. 저 진통제 며칠 먹다가 여기 왔는데요 하니까, 다른 진통제 처방할 거래. 미친, 하는 생각에 저 약 필요 없고요, 가볼게요 하고 나왔어.  "하하 그 친구가 너 미친 O인 줄 알겠다." 아니 뭐 말도 재수 없게 해, 어린놈이 요즘도 의사가 벼슬인 줄 아나 봐.  내 돈 내고 내가 왜 그런 틱틱 거리는 대접을 받아?  "그럼 다른 병원 가봐야 겠다.  그러니까 내가 인터넷으로 사람들 평가도 보고 잘 정하라고 했잖아? 의사들도 사람이라 성실한 사람과 물건으로 대하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나뉘지. 내가 여기서 거기 병원 좀 찾아볼게."


동생은 그로 인해 하루 종일 아프고 짜증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지코 때문에 하루가 기뻤는데 그녀는 개코 때문에 하루 종일이 힘들단다.


사람을 사물 아닌 생명으로 바라봐 주고 그에게 기쁨을 주는 것,
그때 인간은 열정이 발현되고  사랑(아가페) 파동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사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 생명의  궁극적인 행복감 일지도.  


한 달이 지나자 머리가 쑥쑥 자라 다시 지코를 만나러 왔다. 이전보다 더 잘해주고 더 열심히 몰입한다. 시간 약속도 잘 지켰다. 난 이 집에 단골 할 거다.  미용을 마치고 지코에게 카드를 건넨 뒤 그에게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 혹시 걸아갈 만한 가까운 곳에 마트 어디 있는지 알려줄래?" 그가 내 질문을 못 알아 들었다. 내 발음 문제인지 다시 유창하게 혀를 꼬아 물었다. 지코가 또 못 알아 들었다. 그때 저쪽에 있던  백인 여직원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부지런한 지코는 열정 넘치 영어는 모자란 히스패닉이다.  아니면 내 혀가 게으르거나......




Spanish로 부른 Josh Groban의 유명한 곡  Alejate 떠나버려요

 https://youtu.be/nlWOpqgkH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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