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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l 02. 2022

삶의 나사와 못

 미국의 장점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에 없는 건축자재 백화점 Home Depot와 Lowe's가 있다는 점이다.


 문득 머리에 스친 DIY 작품 하나가 내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작업공간이 협소함에도 그 물건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오랜만에 간 홈디포, 그곳엔 건축자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추억도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 내가 화초 사러 왔었지, 맞아 여기서 산 화초를 아파트 직원 제임스한테 주고 왔잖아. 열쇠를 복사했어, 그래 자동으로 복사하는 기계에 넣어서 내가 무척이나 기뻐했었지. 장소들이 선물하는 머릿속 기억들은 지우개로 지우거나 치매로 고장 나기 전까진 내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 일 것 같아 기억을 즐겼다.  


 두꺼운 원목은 적어온 사이즈로 재단해서 구입했다. 사실은 서재 책상에 이단 책꽂이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이 욕구는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처음 해보던 목공에 재미와 자신감을 얻어서였다.  


"가만, 나무는 이거면 됐고 뭘 더 사지?"


 니스와 도료도 고르고 마지막으로 못과 나사를 집어 들었다. 긴 나사를 집어 든 순간, 또 기억이 나를 이십 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처제 가족의 이민 초기, 처음 시작하던 비즈니스 가게에 목공 작업을 도와주었다. 구석구석 키 큰 나사들을 아주 단단하게 조여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고 고장 나지 않게 작업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집짓기 봉사하던 장면을 그렇게 부러워하더니 그 일을 돕는 동안 나는 퇴임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 못가 업체는 부도나고 물건을 전부 빼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해진 날짜까지 시간은 없고 가게를 해체하는 작업은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나사를 너무 꼭 죄어서 나사 머리의 홈이 뭉개져 헛도는 것이었다. 전동드릴은 소리만 나고 나사는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 모든 나사는 조일 때가 있고 풀 때가 있다는 인생 진리를 깨달았다. 어떤 경우든 모든 나사의 조임은 98% 정도 해서 마무리해야 적당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가장 고생한 것은 못이었다. 정말 낡은 못이 없는 곳이 없었다. 굵고 긴 못은 서까래부터 천장, 가벽, 경량 목재까지 구석구석 박혀 있었다. 처음에 이상한 업자를 만나 폐자재 배출을 안 하고 작업 때 나온 폐목재들을 재활용할 거라며 창고에 놔둔 것이 화근이었다. 창고에는 공사 때 나온 폐자재들로 가득했고 못은 숙명이 되었다. 혹시 재활용하려 해도 커터로 못을 자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못은 한번 박히면 빼기도 어렵고 재활용도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타카를 갖게 되자 망치로 못을 박는 대신 타카로 쏴서 자리를 잡고 중요한 몇 군데만 나사로 마무리를 하는 똑똑한 유인원으로 성장했다.


그때 결혼이 못 박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엔 사랑에 취해 쾅쾅 못을 박는다. 취기 가시면 정신 번쩍 들어 옆에 누워있는 낯선 여인의 성격과 만난다. 그녀는 치약을 중간부터 짜고 나는 치약 끝에서 단정하게 짜야하는데  다툼이 시작된다. 화장실 변기 뚜껑을 덮어라 마라, 앉아 싸라, 아니 서서 쌀 거다. 사랑은 개뿔, 적과의 동침은 시작된다. 내가 돈 많이 벌어올 땐 갑이 되었고 그녀가 경제적으로 나를 도울 땐 을이 되었다. 무슨 백마고지전도 아니고 자존심 고지 하나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적과의 전투는 계속되고, 곧이어 중재할 유엔군 아이가 등장한다.  중재는 무슨, 아이는 딱 아기 냄새날 때 잠깐 행복하고 조금 지나면 딸은 나닮아 밉고 아들은 꼭 지 엄마 닮아 밉상이다. 대학 기숙사에 던질 때 눈물 나고 군대 갈 때 서운하고  이 아이가 자라서 자기 밥그릇 해결하면 자유를 찾아 집을 나간다. 그는 나의 판박이로 산다. 여인을 만나 사랑에 취하고 깨면 정신 차리고 싸우고 헤어지네 마네... 못이 안 빠진다.


 우리는 왜 그럴까?


 운이 좋아 평생 홍알홍알 사는 사람이 그리 부럽지 않은 것은 그들도 대단한 인격이라 금슬 좋은 것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운이 좋은 것뿐, 그들은 다른 곳에 문제가 있다.


 나의  문학적 스승이신 로맹 가리는 이상한 결혼생활을 하셨다. 그럼에도 그분의 글에 주저함 없는 탄력이 깃든 것을 보면 결혼의 성공과 인생의 성공은 굳이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부부들은 결혼이 못 박는 것 아니라 나사 박는 것 같다. 언제든지 손쉽게 풀 수 있도록 살살 조이고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는, 이것은 아마 여성이 경제적 지위를 가지면서부터 생긴 것 같다. 그동안 "처자식 먹여 살린다"는 명분으로 로마 황제처럼 군림하던 남성들은 이젠 바퀴벌레처럼 주방으로 숨어들어 생존을 모색한다. 설거지하고 요리하는 남성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살살 아줌마처럼 바뀐다.  


요즘 "나는 S다" 예능을 보면서 몇 번을 웃었다. 여자가 "결혼하고 남자 친구 만나도 되냐"는 장면 때문이었다. 미친, 그럼 나도 결혼하고 여자 친구 1,2,3,4 만나 술 한잔 하고 늦게 들어와도 되겠네. 새벽 네시에... 여성들도 직장을 다니면서 남성이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한다. 회사 스트레스 푼다고 매일 술 한잔 하고 늦게 들어오는 아내. 우리나라는 낮엔 스트레스에 밤엔 술에 취한다.


 남자들 업보다.






 못 박힌 친구를 불알친구라 부른다.   

 (명사: 남자 사이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면서 가까이 지낸 벗을 이르는 말)  


 아니면 Soul mate라고 해야겠지. 나는 한국에서 불알을 엄청 잘라냈다. 옛날 생각해서 너무 반가워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못 본 지 이십 년 만인데 종일 정치 이야기만 하고 마지막에 헤어질 때 "나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온 거냐"라고 조용히 물었다. "아니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그 후론 그와 다신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못은 녹슬고 잘빠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두거나 다른 곳에 다시 쓰려면 잘라내야 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 새로 사귀는 친구는 못 대신 나사를 박는다. 예의를 갖추고 반말하지 않고 형 동생 안 한다. 친밀감의 요단강을 잘못 건너면 부부든 친구든 부자지간 이든 관계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구와 오랫벗이 되는 이유, 달이 조수간만의 차를 유지하는 까닭은,

지구와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관계의 거리 문제에서 실패하고 살았다. 가까울수록 상대의 깊은 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나 사오정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삶도 나사로 이루어진 것 같다.


태어나서 조이기 시작해 죽을 무렵 다 풀고 죽는...

삶에 못을 박으면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교만하기 쉽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다 교회도 다니고 절에도 다녔는데 영생과 해탈은 없고 영원히 우주 먼지로 떠돈다.


 나는 내 삶의 고쳐지지 않는 녹슨 못은 뽑지 않고 잘라낸다.


 그 대신 그 자리에


고쳐먹은 생각의 나사를 다시 박아,

좀 더 겸손하고 여백을 가진,

진지한 인생을 살려고 무척 노력한다.

      

드디어 나사로만 이음을 조인, 이사갈때 풀어서도 갈수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이단 책꽂이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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