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루틴대로 재택사무실에 음악을 틀고 인터넷 열고 사이버와 이승을 연결한다.
이 추세라면 저승 갈 때도 노트북이나 핸드폰은 챙겨갈 판이다. 노트북 화면에는 날마다 새로운 배경화면이 뜨는데 오늘은 웬걸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떡하니 자리 잡고 도도한 자태로 나를 유혹한다.
뮌헨에서 두 시간 거리, 가족들이 지들끼리 작당해 바쁜 나를 밀어내고 애견 루이만 던져 놓은 채 떠난 보름간의 유럽여행. 그때도 나는 그들 뒤치다꺼리를 했다. 카톡전화로 길을 가르쳐주고 식당, 예약된 호텔 주변의 볼거리, 유적지의 역사나 인물 탐구 정보를 건네주었다. 마치 톰크루즈가 움직이면 항상 정보를 제공하는 팀원처럼 공부한 것을 요약해 대통령실에 보고했다. 카프카의 "변신"도 꼭 챙겨서 비행기나 호텔에서 읽고 생가를 방문하면 풍미가 다를 거라고 권했다. 이 충고는 오래전 이스라엘을 건성으로 돌아다니고 덜렁 사진 한 장 남은 추억이 전부였을 때 통렬히 회개하며 깨달은 진리였다.
갑자기 그 성을 오르고 싶었다. 아니 가고 싶었다.
그때도 살펴보았지만 특히 여행 다녀온 후기를 찾아 꼼꼼히 읽었다. 역시 글쟁이들은 영상쟁이들보다 깊이가 있다. 분명 영상 만들기와 글 만들기는 차이가 있을터 나는 글을 통해 따라가는 편을 택한다.
눈을 감았다. 뮌헨 중앙역에서 퓌센행 기차를 타고 평원과 호수를 지나친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투명한 하늘이 펼쳐지고 여기가 독일이구나 하는 경탄을 자극한다. 퓌센역에 도착하자 인파는 무리 지어 버스정류장을 향하고 나는 그들 틈에 무리가 되어 몸을 맡긴다. 입장권은 예매해 놓았으니 마리엔 다리로 가서 사진을 찍고 느리게 이동하면 될 일이다. 역에서 먹은 소시지가 내 배를 든든하게 지켜줄 테니 한동안 여행에 몰입하며 성을 지은이 루트비히 2세와 그의 음악동지 바그너를 만나면 되고 그야말로 느리게 잘근잘근 씹어 단물을 뺄 작정이었다. 한 이십 분쯤 걸었을까 마리엔 다리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목조다리라 통제당하며 관람했고 나는 마침내 사진에서 보던, 미국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 디즈니에서 보던 그 백조의 성을 멀리서 만나게 되었다. 뭉클했다. 사실은 맞는데 사실과 다른 사실을 항상 접하다 갈망과 함께 와서 그런지 느낌이 조금 새로웠다.
그날 성 내부를 둘러보며 물 반 중국인 반이라 관광객 틈에 조금 힘들었다. 갑자기 애틀랜타에 살 때 엎어지면 코 닿을 헬렌조지아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은 앞마당처럼 그곳을 드나들었고 지금도 그때 구입한 앤틱 기념품이 집에 많다. 맞다, 독일식 바이에른 마을을 흉내 낸 관광지였으니 굳이 복잡한 여기를 오지 않아도 될 텐데...
"레드썬"
눈을 뜨자 바탕화면에 노이슈반 슈타인 성이 자태를 뽐낸다.
나는 랜선여행 아닌 상상여행을 했다. 아침에 아내가 일어나 사진에 몰입한 나를 보고 " 저기 그거네"라고 말한다. 그녀는 성이름도 기억 못 한다. 요즘 유튜버들의 생명줄 "이것"과 같은 "저기" "그거" 다.
나는 매일 나의 산을 오른다.
이십 대 유명을 달리한 전설의 알피니스트 "마크 안드레"와 빙벽을 오르고 프리솔로의 귀재 "알렉스 호놀두"를 따라 요세미티 엘 캐피탄을 오른다. 나는 자유롭고 아직 몸이 뇌를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문학의 거목 황석영이 신간 "할매"를 출간할 때 인터뷰를 보며 그도 자기산을 매일 오르는 위대한 영적존재임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나의 할 일이 소중하고,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며, 조금 느리지만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돈 봉우리, 권력 봉우리, 욕망 봉우리, 정력의 산을 오르지 않아 좋은 요즘 삶의 산행이 늘 뿌듯하다.
이번주말엔 머리에서 나가 40킬로 정도 자전거 산 오르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