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뜻한 나라 #1

by 강노아

시골 마을의 시립도서관은 시골답지 않게 정갈했다.


깨끗한 건물외관은 그동안 우리가 치열하게 살면서 숙명으로 안아야 했던 가난과 무지, 세계화에 어두운 과거마저 정리한 듯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갖추었다. 들어서는 순간 책 냄새가 밀려든다. 이 냄새는 어느 나라나 똑같다. 박제된 나무냄새가 났다. 가슴에서 콩닥콩닥 행복감이 밀려왔다.


책방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아지트 중 한 곳이었다. 무서운 아버지는 위인이 되라며 아들에게 위인전과 동물에 관한 책을 자주 선물해 나는 본의 아니게 동물을 좋아하고 위인이 되고픈 어린이로 자랐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도 아버지를 졸라 그 시절 드물게 풍금을 들여놓았다. 가족모두는 어머니 반주에 맞춰 노래했고 노래할 때 아버지는 무섭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 중창단 멤버가 되었다.


어른들의 정강정책엔 만화책이 빠져 있었는데 나는 만화를 좋아해 몰래 동네 만화방에 만화를 보러 가곤 했다. 어느 주말, 무서운 아버지가 만화가게 옆 복덕방에서 하루 종일 누구와 수다를 떠는 바람에 갇힌 하루를 빼면 그 동네를 이사할 때까지 나는 홀로 만화방을 몰래 드나들었다. 만화가게는 톰소여의 오두막이었고 아마 나는 만화에서 상상력을 배운 것 같다.


어느 나라건 도서관엔 침묵이 흘렀다. 침묵의 저편엔 저마다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책에 몰입하는 총각, 신발을 벗고 널브러져 자는 처녀, 테이블 전체를 자기 것으로 삼아버린 노처녀, 침묵은 같으나 저마다 방문 목적은 다르다. 이층으로 구성된 도서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구석구석 잘해 놓은 것 같은데 관리는 촌스타일이다.

한국에서 느끼는 특이한 점 하나는 도시에 따라 수준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인근 조금 큰 도시의 시립도서관만 해도 서울과 별반 차이 없을 만큼 시설이나 근무하는 사람의 태도가 다르다.


책을 몇 권 빌렸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많이 다녀 그런지 책 찾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역시 도서관은 복잡하다. 작은 눈을 치켜뜨고 <가나다라 1234> 장서번호를 손에 쥐고 "위아래 위위"를 반복하다 마침내 <802-천 532ㅎ>을 찾았다.

도서관 직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벙어린가. 마음속에선 그녀의 대사가 읊조려진다.


" 어서 오세요. 이 동네 사세요? 책 대여기간은 2주입니다. 앱으로 연장가능하고요. "


혼자 속으로 훗 웃는다. 미국이나 직원들이 수다를 떨지 여기서야. 그래도 한국 동사무소는 획기적으로 태도가 좋아졌다. 문을 나서는데 침묵이 섭섭한지 뒤에서 안녕히 가시라는 말도 따라 나온다. 나는 소심한 복수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 책을 반납하러 갔는데 대출할 때 직원이 아닌 중년여성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도 예쁘게 하고 싹싹하며 잘 못 찾는 책도 찾아준다.


" 아, 사람마다 다르구나 "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 지난번에 왔을 때 직원이 좀 그렇더라고요.~~ 블라블라~~ "


일러바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했다. 이놈의 주책, 도서관을 나서며 입을 마구 때렸다.

어릴 때 어머니는 동생에게 욕을 하거나 입이 잘못하면 늘 막대 자로 입을 가볍게 때렸다.


입을 너무 세게 때려 그런지 입이 아펐다. 입에게 사과하고 밥으로 달래야 해서 (약간 바보같이 말한다) 인근 수제 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백팩에 담긴 책이 너무 좋다. 식당에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이리저리 살폈다. 책의 질감, 디자인, 활자, 저자와 번역자등을 탐색했다. 책은 나의 여행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한국생활에 익숙해지자 도서관 사용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앱으로 검색하고 노트북에서 전자책을 빌리며 상호대차 신청까지 하게 되었다. 아주 옛날 한국에 살 때 경험해 보지 못한 새뜻한 나라를 만난다.


책을 읽었다.


예전보다 눈이 어둡고 집중력도 약해졌다. 게다가 어려운 대목은 몇 번씩 읽어야 한다. 쇠도 녹여버릴 기세로 세상을 먹어치울 때, 종이도 태워버릴 기세로 독서를 더 했어야 했는데.

암, 가장 늦은 때가 가장 빠른 때 이기도 하겠지.


쉿,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한국의 시립도서관엔 금괴 가득하고 지하엔 원유가 가득하더라.

알만한 사람만 알아듣고 새해엔 도서관 다녀보면 어떨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나무가 넘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