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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노아 Apr 02. 2018

세이건 행 후발대_03

  동료들과 떨어져 홀로 후발대에 배정받았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 마리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닌 두려움이었다. 18차 이주 그룹이 떠난 후 지구의 인구는 이주가 처음 시작되던 시절의 7%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도로가 신호등이 필요 없을 만큼 한산해지고, 대형 경기장들은 쓸모없는 폐허로 전락하고, 밤이면 비행정을 타고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도 창문에 불이 켜진 건물은 겨우 서너 개나 보일까 말까한, 그런 –거의 다 버림받아 가는- 지구의 모습이 마리는 무서웠다. 15차인가 16차 이주가 진행되던 즈음부터는 종종 악몽을 꿨다. 이주 왕복선을 놓치거나 이주 그룹 명단에서 누락되는 바람에 모두가 떠난 지구에 홀로 남겨져 버리는 꿈이었다.

  마리가 결단코 후발대로 남을 수 없다며 극렬하게 항의하자 칼은 당황한 것 같았다. 평소의 마리를 생각해봤을 때 그 정도로 반발이 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마리에게는 합당한 명분이 있었다. 혹등고래 표본은 11차 왕복선으로 세이건에 보내졌고, 유전자 보존 연구소가 온전한 상태의 표본을 수령했다고 확인한 컨펌 로그까지 있었다. 이제 와서 연구소의 표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마리의 책임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칼은 두 손을 들었다. 혹등고래 유전자 채집은 원래 후발대로 배정돼 있던 다른 조직에 맡기기로 하고, 마리를 20차 그룹에 넣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칼의 결정이 너무 지체되는 바람에 19차에 추가로 배정받을 타이밍을 놓친 것은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마리는 안도했다. 20차 왕복선의 출발 일정은 19차와 겨우 한 달 차이였다. 한 달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며칠 뒤 칼은 툭하면 들먹이는 ‘꼬였다’는 말과 함께 우주정거장 행 셔틀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대신 세계연합 이주 관제팀이 비행정을 보내 마리를 우주정거장까지 데려다줄 거라고 했다. 마리는 그 말을 믿고 칼이 지구를 떠나면서 보내준 메시지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비행정이 데리러 올 시간과 좌표가 적힌 메시지를.

  한 동료는 언젠가 마리를 일컬어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사기꾼만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마리는 한 사람의 몇 년 치 인생이 걸린 문제가 칼에게는 단순히 ‘남의 일’에 불과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고, 칼이 아닌 자신에게 화가 났기 때문에 분노했고, 분노하는 자신에게 또 분노했다. 스피커 앞에 마이크를 갖다 댄 꼴이었다. 그렇게 마리의 머릿속이 분노로 거의 폭발할 때쯤, 오버로드가 멈춘다.


  다 왔어요.

  린이 오버로드의 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린다. 마리가 초췌해진 얼굴로 뒤따라 내리자 갑자기 거대한 바닷바람이 옷자락을 펼치며 달려든다. 비틀거리면서 겨우 실눈을 뜨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다. 두 사람이 선 곳은 잿빛 암석으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절벽 윗부분으로, 아래로는 바위와 어두운 모래가 뒤섞인 우중충한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시커먼 바다에서 쏟아져 나온 파도가 회색 레이스처럼 기나긴 해안선을 따라 흩어진다.

  마리는 문득 자신이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주, 아주 오래 전, 이 부근에 서서 이렇게 막막하게 바다를 바라봤었다. 아크 프로젝트의 같은 조를 이루었던 동료들과 함께.

  린이 손을 흔들어 마리의 시선을 끈다.

  저기가 우리의 캠프예요.

  절벽 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하얀 돔 대여섯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건물들 쪽으로 걸어가면서 린은 그곳이 자신과 마리가 속한 ‘후발대 B조’에게 배정된 거점 시설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후발대라는 말에 마리의 목이 멘다.

  린에게 이끌려 캠프 내부 시설과 숙소를 둘러보고, 함께 지낼 다른 후발대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B조가 맡은 업무와 일정에 대한 브리핑이 끝난 뒤, 마침내 마리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캠프 앞쪽의 해안은 주기적으로 혹등고래 무리가 지나가는 것이 육안으로 관측되던 지점으로, 세계연합 해양 연구부에서 공유해준 자료에 의하면 파프리냐가 이번 달 안에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보트로 파프리냐를 뒤따라가면서 기회가 되었을 때 유전자 채집용 샘플러를 먹이고, 며칠 뒤 배출된 샘플러를 회수하여 캠프로 돌아오면 된다.

  혹등고래의 샘플러를 어떻게 회수했더라. 마리는 예전의 경험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수많은 종種을 제각각의 방법으로 쫓아다녔다 보니 기억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어떤 종은 피부에 샘플러를 붙였다가 떼어내기만 해도 되었던 반면, 하루 종일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배설물을 받아내어 뒤져야 했던 종도 있었다. 그 시절이 얼마나 고되었던지.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마리를 향해 린이 눈을 찡긋해 보인다.

  나도 함께 갈 거예요.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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