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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y 31. 2024

나는 법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대상 - 김준현 시 차상미 그림

이번에 가져온 시는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나는 법]이라는 동시입니다.

김준현 시인은 (개그맨 아님) 동시보다 시로 먼저 등단했는데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이 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뿐만 아니라 동시, 평론 등으로 모두 등단했습니다.





동시와 관련된 문학상 공모전 내용을 보면 신인상은 10편 이상의 동시를 제출해야 하고 그 외는 거의 책 한 권의 분량인 약 50편 내외의 동시를 내야 합니다.

평소에 많이 써두지 않으면 안 될 분량인 것 같아요. 만약 동시를 꾸준히 써놓으신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동시집을 처음에 손에 쥐고 아이에게 보여줬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법이 새가 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는 법이다라는 말이에요?"


라고요.

저는 당연히, 정말 그냥 당연하게 '날다', 'fly'를 생각했거든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이에게는 'fly'도 있지만, 'law'도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나는 법'이라는 'I'm the law'라는 동시를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1부는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2부는 '흰 크레파스로 점 하나를 찍었다', 3부는 '말에도 뼈가 있을까?', 4부는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를 간질이면', 5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새가 되었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안시인의 해설이 실려 있지요.




표제작인 '나는 법'은 1부에 실려 있어요.

이 동시집의 매력은 책 속에 담긴 동시들도 멋지지만 동시들과 함께 한 그림들이 참 예뻐요. 파스텔 빛의 색감과 무채색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무채색 속에 노랑, 파랑 같은 원색이 도드라져서 동시 같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파란 하늘 위로 연을 날리는 모습이 싱그럽습니다.

하얀색 무채색 글씨가 빨간 연을 만나니 더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나는 법


연을 띄우려면

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


무당벌레가 높은 곳을 찾아 기어오르는 것처럼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뚫고 힘껏 뛰어오를 때처럼

활짝

지느러미를 편 가오리

연이 떠올라요


얼레를 돌리면 바람이 감겼다가 풀리고

몽골에서 온 바람인지

독수리만큼 묵직한 게 걸렸는지

팽팽해지는 실

덥석, 구름이 물고 있는지도 몰라


구름으로 연결된 전화선을 타고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엄마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파닥파닥 떠는 걸 보니

추운가 봐요, 그곳은


새가 없는 새장이 있듯이

엄마가 없어도 엄마 눈빛이 남아 있듯이

가오리가 없어도

가오리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몽골까지

페루까지

우리 함께 여행을 가요


새들이 지나는 길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놓아주면

언젠가 바람이 될까요?


활주로의 끝에서

나는 눈이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에요




이 동시집에 실린 동시들은 거의 대부분 이 정도의 길이입니다. 짧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빠르게 읽히고 길게 느껴지지 않아요. 어쩌면 이것도 동시를 쓰는 사람의 능력이겠지요?






저는 말놀이를 하는 동시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3부에는 한글공부와 관련된 동시들이 나오는데요. 전 이 파트가 참 재미났습니다.





한글 공부 - 이 (ㅣ)


비가 내리는 날

빗소리를 적고 싶은데 적을 수 없는 건

빗소리가 비와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야


비는

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모습으로만 내리니까


바닥에 닿는 비는

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빗방울 같은 쉼표들을 튕기고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입술을 한껏 벌린

ㅂ을 붙여 주자



진짜 비가 되었다




이 시는 왠지 명조체로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동시집 속의 'ㅣ'가 약간의 꺾인 모습이 곧은 직선으로 내리지 않는 비 같았거든요.

동시를 읽다 보면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ㅂ'과 'ㅣ'를 붙여서 '비'라는 글자를 만들면 정말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도 들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장르가 동시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동시는 바로 5부에 있는 '0원이 영원히'라는 동시입니다.

이 동시를 읽었을 때는 살짝 가슴이 아리더라고요. 아무래도 그 장면이 상상이 되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0원이 영원히


        통기타를 치는 아저씨 앞에서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낡은 모자


        0원이

        영원히

        계속되는 모자


        언제쯤

        아저씨 추운 머리를 품고

        따뜻한 둥지로

        지낼 수 있을까?




홍대를 가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가수분을 보곤 했어요. 

어떤 날은 감동을 넘치게 받아서 자리를 못 뜰 때도 있었지요.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 가수 앞에 놓인 작은 상자가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통기타 치는 아저씨의 모자도 가득 차기를 바라며 이 동시를 읽었습니다.






3편의 동시를 이곳에 담으면서 내 마음을 담은 동시를 쉽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을 했다가 바로 접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읽고 감동을 받는 동시들을 쓰는 시인들이 이 생각을 알게 되면 정말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저도 이 글을 연재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쓰고 싶고,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고민할 때가 많은데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더 하겠지요? 

이제 제가 느낀 감상문을 써보겠습니다.



나는 법


엄마가 말하는 건 해야 한다

공부해라

청소해라

그럼 엄마의 법


아빠가 말하는 건 움직여야 한다

축구하자

야구하자

그럼 아빠의 법


누나가 말하는 건 빨리 해야 한다

읽은 책 꽂아라

내 방에서 나가라

그럼 누나의 법


내가 하고 싶은 건 언제 하지?

내가 검사라면 제일 어린애를 위해 처벌해 달라고 할 거야 

내가 판사라면 느긋하게 천천히 판결할 거야

아니다

그냥 내가 법할래

나는 법



요즘처럼 국민들의 호소를 들은 척도 안 하고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버리는 인물을 보며 그 원망을 다 어찌 감당하려 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차라리 법대로 하면 더 나으려나요? 

그들에게 동시집을 안겨주고 싶어요. 

그럼 좀 따뜻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슬픔을 안고 눈물을 참는 세상이 아닌 누구나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숨진 훈련병 소속 사단의 국화꽃 세 송이 (온라인커뮤니티-더캠프 자유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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