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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Jun 07. 2024

엄마를 주문하세요

박경임 시, 민지은 그림

이번 동시집은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시인 박경임의 첫 동시집 [엄마를 주문하세요]입니다.

현재 동시를 가르쳐주시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1000편의 동시 중 100편 정도를 골라 책에 싣는다고 하더라고요. 나머지 동시들은 버려지거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고가 된다고 합니다.

이 동시집이 작가의 첫 동시집이라면 얼마나 떨리고 설렜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보통 동시집은 4,5부로 이루어지는 듯해요. 이 동시집 역시 4부로 이루어져 있고 48편의 동시가 실려 있으며, 이안시인의 해설이 이어집니다.

동시집에 실린 삽화는 꼬마 니콜라처럼 펜화로 그려진 것 같은데 슥슥 그린 듯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어 동시를 감상하며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1부는 '숨어 있어도 별은 빛이 난다', 2부는 '날개가 나오는 문', 3부는 '나의 유리 사람', 4부는 '눈 감고 오래 나무를 안아요'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서산마애불>이라는 작품도 4부에 실려 있습니다.




1부의 제목이 '숨어 있어도 별은 빛이 난다'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그림에 끌려서 동시를 읽게 되었는데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제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위로가 됐던 동시예요.



개구리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 삼 남매 같기도 합니다. 시와는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옥상에서 별을 보기도 했거든요. 그날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개구리야, 고마워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밖으로 나온 여름밤


개구리들이 자꾸만

말을 건넨다


왜그래 왜그래 왜그래

왜그래 왜그래 왜그래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는데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어떤 일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곁에서 계속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참 난감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또 그냥 두면 서운해져요.

알 수 없는 마음이지요.

근데 이유도 묻지 않고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이 개구리도 그렇게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 동시는 2부에 실린 <아직도>라는 동시예요. 이 동시를 읽으면서 우리 딸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중학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랍니다.




아직도


형 방엔 아직도라고 부르는 섬이 있어

섬에서는 급한 일이 없지


느릿느릿 일어나고

느릿느릿 숙제하고

느릿느릿 옷을 입고


아직도 안 나왔니

빨리 밥 먹고 학원 가야지

엄마가 애타게 불러 보지만


형은 아직도가 좋아

아직도에 오래 머물러 있어


섬 밖으로 나오면

늦었다 소리치며

밥도 안 먹고 뛰쳐나가지



이 동시에 나오는 형 역시 느긋한 아이인 것 같아요. 우리 딸과 친구 먹으라고 전하고 싶네요. ㅋㅋ.

아직 괜찮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시계를 보고는 현관을 뛰쳐나가는 모습이 그림 속 '아직도' 문을 열면 보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동시는 4부에 실린 <무서운 이름>입니다.

그림도 까매서 공포스러운 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읽어보면 정말 아이만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무서운 이름


       장모뼈다귀해장국

       할머니산채비빔밥

       소머리국밥

       곰국을 좋아하는 아빠

       곰국에 끓인 이모손칼국수를 먹고

       돼지껍데기구이 닭똥집 막창구이 간판이 있는

       거리를 걸어가다가

       입맛 다시며 말한다


       내일은 엄마내장탕 먹자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영화 '스크림'이 생각났어요. -0-

할아버지를 보고 있는 아이의 입이 딱 그 가면과 같았거든요. 

아이들은 간판에 걸린 이름을 보고 어떻게 저런 음식을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무시무시하게 엄마내장탕을 먹자고 하다니, 정말 잔인하네요. 크크.





그러고 보니 표제작인 <엄마를 주문하세요>라는 동시를 살펴보지 않았네요. 이 동시는 1번부터 5번까지의 엄마를 준비했고 마음에 드는 엄마를 골라보는 내용이에요.

매일 놀아주거나, 아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엄마는 주문 폭주로 매진되고 맙니다. 

그리고 한 번 선택한 엄마는 반품이 안된다고도 하지요. 


엄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동시를 읽고 들었던 생각은 매진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쩌면 커서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릴 때는 매일 놀아주는 게 맞아요. 어차피 좀 크면 엄마랑 놀아주지 않거든요. 

한 편으로는 너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주면 제어가 안되어 그 아이도, 부모도, 주위의 사람들도 힘들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최근 교감선생님 얼굴을 때리는 초등학교 아이의 영상을 보면서, 그리고 그 아이의 학부모가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스스로 제어가 가능한, 그래도 사람다운 아이로 키우자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이제 제가 느낀 감상문을 써보겠습니다.



아직도


거실 위엔 아직도라고 부르는 섬이 있어

그 섬은 누구나 갈 수는 없지만

그 아이는 있지


섬 안에서 아이가 뛰어다니고 

섬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섬 안에서 나무를 베고


아직도 뛰어다녀

제발 도끼를 그만 휘둘러

엄마가 애타게 소리 질러 보지만


아이는 아직도가 좋아

아직도에 오래 머물러 있어


섬 밖으로 나오면

바다에서 소리치며

놀러 가자 뛰쳐나가지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위층에는 아이가 뛰어다니고 부모님이 발도장을 쿵쿵 찍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한 번은 안방 화장실에서 들려오길래, '파' 정도 되는 음으로 "다 들려요~"라고 책상에 앉아 말했는데 노랫소리가 뚝 그쳤습니다.

다들 소음에 질릴 대로 질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이제 포기를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때 동시집 한 권 꺼내 들고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또 마음이 풀리기도 해요. 

동시의 위력이죠. 

지금 방금, 윗 집에서 의자를 끌었어요. 

동시 한 편 더 읽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아직도 잠에 들지 못하시는 분들 동시 한 편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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