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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Sep 26. 2024

작가 픽 SF동화집

내 여자 친구의 다리 - 정재은, 고조를 찾아서- 이지은외

얼마 전 남유하 작가의 <어린이와 환상문학 - SF와 호러를 중심으로>라는 유료강연을 들었다. 

과학소설로는 워낙 유명한 작가라 신청해서 들었는데 조곤조곤 방대한 지식을 방출했다. 

그중 SF동화로 추천한 도서가 있어서 오늘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정재은 작가의 [내 여자 친구의 다리]와 제6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고조를 찾아서]이다. 

한낙원과학소설상은 거의 대부분 청소년소설인데 이 작품은 동화여서 추천한다고 했다. 



그때 강연을 들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기성작가였다. SF에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것 같다. 

공모전뿐만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도 점점 SF 동화를 내고 있다. 이제 어설프게 우주, 타임리프 정도로 소재를 잡아선 안된다. 

복제인간도 둘 가지고는 택도 없다. SF동화분야가 점점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내게 낯선 작가의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6편의 동화가 실려있는 정재은 작가의 [내 여자 친구의 다리]부터 읽었다. 


먼저 작가가 동화를 쓰기 시작하게 된 건 첫 번째 작품인 <아바타 학교> 덕분이다. 

학교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아바타개 대신 학교에 간다. 내 방에서 교실 컴퓨터에 접속하여 '홀로바타'를 실행하면 된다. 

자신의 신체와 거의 걸맞게 제작되는 아바타  성형까지 할 수 있다. 홀로그램끼리 친구가 되고 그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험담도 한다. 아바타 학교에서 뭐든지 잘하는 친구를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났을 때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졌다. 


솔직하게 말할게. 널 보고 많이 놀랐어. 물론 처음에는 진짜 네가 네 아바타랑 뭐가 다른지 잘 몰랐지. 넌 네 아바타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넌 휠체어에 앉아서 멀뚱히 서 있는 날 올려다보며 웃었어. p23


만약에 장애가 있어 바깥활동이 쉽지 않다면 이 환경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함께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이 서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관계를 축적할 수 있을 테니까.  





두 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내 여자 친구의 다리>이다. 

피루엣(한 다리로 서서 발끝으로 몸을 뱅글뱅글 돌리는 발레 동작)이라는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하는 연이. 

리오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아이를 만나러 가자는 엄마의 제안에 따라나선다. 

사고를 당한 아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의 다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부끄러웠다. 


세상에는 자기들끼리 말하는 걸 아이들이 절대로 못 알아듣는 줄 아는 어른들이 있다. 귤 먹던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p34


귤을 먹던 어른들 뒤로 연이는 그 이야기들을 다 듣고 있었다. 어른들을 보면서 리오는 연이의 절대적인 같은 편이 되기로 한다. 

연이는 눈꺼풀처럼 귀꺼풀도 갖고 싶어 한다. 이 아이에게 다리를 만들어주기로 한 박사는 리오의 엄마다. 


자기 다리는 자기가 움직이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야. 남이 대신해 줄 순 없어. p37


냉정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연이는 닫고 있던 마음 꺼풀을 연다. 

이 작품에서 발레 용어가 꽤 많이 나왔다. 연이의 다리를 본뜨기 위해 리오가 발레 동작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대회에 나가게 된 연이의 고충이 드러난다. 

인조 다리의 배터리 문제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빨리 닳아버린 배터리 때문에 연습을 많이 못하게 되고 상대 무용수와 호흡이 힘들어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자연스럽게 적응해 가는 연이를 보며 리오 엄마는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인조다리 덕분에 멋진 발레 동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동안 노력한 것을 알아주지 않고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강하다. 연이와 리오는 달로 떠난다. 중력이 다른 환경에서 인조다리가 어떻게 작동을 할지 궁금했다면서 말이다. 멋지다.  



이외에도 가상정원을 만든다던지 <이 멋진 자연>, 

외계인 뚜다의 체험생물 장풍 303을 키우는 지구인 이야기 <뚜다의 첫 경험>라던지,   

하늘을 보고 싶은 바닷속에 있는 유주가 스마트 잠수복과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곧 보게 된다던지, <하늘, 구름, 떡볶이>

전학 오자마자 똥이야기를 해서 별명이 똥이가 된 '꽤풍틱밝쏭%387'의 이야기라던지 <똥 실명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마지막 <똥 실명제>는 누구나 똥을 보면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 번호가 '11119999 x 3.141592' 다. 

작가의 엉뚱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번째 작품은 제6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고조를 찾아서]이다. 



이미 한낙원과학소설상에 대한 내용을 올린 적이 있다. 4, 5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번엔 6회 수상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https://brunch.co.kr/@noana/130 


책에는 총 5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먼저 표제작인 <고조를 찾아서>는 자신의 고조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걸 알게 된 윤서가 과거로 간다는 내용이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소재는 꽤 많이 나왔다. 그런데도 작품상을 받은 것이라면 다른 작품들과 이 작품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수상했을 것이다. 

시간통로를 지나면서 과거의 행적들을 볼 수가 있다. 절대 이 통로를 건드려서는 안 되지만 하면 안 되는 걸 꼭 해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윤서는 손가락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쪽지를 통로의 울퉁불퉁한 벽 틈에 밀어 넣습니다. 날카로운 사진의 모서리에 온 힘을 쏟아붓습니다. 시간의 벽도 질세라 힘을 주어 버팁니다. 그러나 윤서의 간절한 마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p22


윤서의 쪽지 덕분에 고조할아버지와 친일파 친구들은 모두 잡혀간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숨통이 트인 날이 오게 된다. 이 모든 게 윤서덕분이라며 윤서의 조상들은 고마워한다. 

엉뚱하지만 기발한 내용이었다.

독립운동가보다 친일파들이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찬다. 

이런 이야기들도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같은 작가의 우수작 선정작인 <아아마>는 원하는 마스크를 골라 얼굴에 씌우면 그 얼굴이 된다는 설정이다. 

마스크에 물이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세수도 하지 않는다. 

슈렉부인으로 불리던 아이가 많은 친구들로부터 쪽지를 받고 인싸가 된다. 

기한이 되어 재구매를 원했지만 돈이 모자라 결국 자신의 얼굴로 돌아오고 만다. 눈물이 나고 자신은 없지만 용기를 내어 조금씩 나아가려고 한다. 


다음 작품 <구름 사이로 비치는>. 

에셰르 행성에서 연구용으로 잡혀온 꾸꾸는 날개 달린 포유류 붉은날개사슴이다. 귤을 주식으로 먹는 이 동물을 몰래 키우기 시작하는 윤재.  갑자기 사나워진 꾸꾸가 이상하다. 

윤재는 결국 아빠한테 들키고 마필관리사인 엄마로부터 꾸꾸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감각기관을 지구에 맞춰야 했을 것이다. 꾸꾸가 그동안 쉽사리 곁은 내주지 않았던 게 이제야 이해됐다. 
녀석의 마음을, 어떤 의지로 가득한 그 단단한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윤재는 커다란 명마들 사이에 숨어야만 했던 꾸꾸를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p82


윤재는 꾸꾸의 등에 올라 하늘을 나른다. 구름 사이로 보는 빛을 보는 내내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재는 불법 포획된 붉은날개사삼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사람들이 구경하러 온다.



그 밖에도 우주 대기권 청소를 봉사로 하게 된 주인공은 일기장을 하나 주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우주의 우편배달부 지모도>. 

지모도의 우편가방을 갖고 우체국으로 가니 다들 그 가방을 알아본다. 지모도 씨를 만나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편지를 받게 되는 은퇴한 우주의 우편배달부 이야기. 


<시험은 어려워>라는 소설은 스마트폰을 보다가 어떤 사이트를 보게 되고 죽음의 고통을 반복할 것이라는 경고문을 보게 되는 주노의 이야기다.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어서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다. 

이 작품의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주노는 결국 자신 대신 친구를 앞에 세우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반전이 있었다. 생각대로 결말로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독특했던 작품. 




SF분야는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다. 

세계관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갈 수 없다. 잘 흘러가다가 블랙홀에 빠지기 십상이다.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작품성이 있고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어야 수상작으로 선정될 수 있다. 이야기는 쓸 수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라서 가슴속 깊이 다독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두 권의 책을 통해 SF동화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제 SF가 어른만의 세계가 아니고 아이들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장르가 되었다. 

좀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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