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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Oct 31. 2024

시인이 쓴 동화

눈물상자 - 한강, 컵 이야기 - 박성우 (어른을 위한 동화)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가 동화를 쓰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소설가들이 동화를 쓴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박완서작가, 오정희작가, 이태준작가 등 예전 시대의 작가들 정도. 

반대로 동화를 쓰다가 소설 쪽으로 전향한 작가들은 많이 있다. 

전향했다기보다 동화, 청소년 소설을 둘 다 쓰다가 청소년 소설 또는 성인 소설분야로 말뚝을 박은 게 될 것이다. 


오늘 가져온 책은 한강 시인(시로 등단을 했다고 했으니.)의 [눈물 상자], 박성우 시인의 [컵 이야기] 두 작품이다. 




한강의 [눈물 상자]는 꽤 오래전 2008년도에 나온 동화이다. 책표지가 꼬질꼬질하다.

2016년에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 해에 한강 작가의 이 책과 전자책 [채식주의자]도 샀더랬다.

그때는 [채식주의자]를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은 동화 [눈물 상자] 역시 그때 읽었을 때는 이게 동화일까? 굉장히 철학적인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분류를 드러내고는 있지만 쉽지 않았다.




다시 읽은 이 동화는 굉장히 심오했다.

역시. 내 읽기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 뿐, 굉장히 좋은 작품이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으니 역시가 역시나 싶다.

이 동화에 실린 삽화 역시 글과 잘 맞아서 완벽한 동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

왜 이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노벨상 수상이 아니었다면 아주 나중에 다시 읽지 않았을까?

무지몽매한 노안 같으니.


아주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뒤에, 아주 오래 울고 난 뒤에, 그 눈물까지 마르고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처음으로 다시 흘리는 눈물이란다. p17 붉은 눈물


매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눈물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

이 둘이 만나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얇은 책이지만, 

금방 읽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안 되는 책이다.

천천히 곱씹고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시인의 동화책이다.


아저씨는 눈물을 판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터뜨린다.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는 아이,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눈물을 사고 난 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궁금했던 아이의 눈물 빛깔은 노랑도, 초록도, 분홍도, 파랑도 아니었다. 그 어떤 빛깔이라고도 할 수 없는 투명하고 미묘한 빛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p63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표지를 보았다.

눈물 상자라는 제목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책을 사고 8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걸 깨달았다. 


눈물을 참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구나. 숨겨진 눈물은 그 가슴 가운데에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지는구나. p66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울고 싶을 때 운 적보다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더 많다.

작가는 대학로에서 독특한 어린이극을 보고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순수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기에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책은 [아홉 살 마음사전]등으로도 유명한 박성우 시인의 [세상에 담고 싶었던 컵이야기]라는 동화다. 

이 책 역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올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평산책방에서 가족 북토크를 열었다. 그때 당첨이 되어 박성우 시인을 뵙고 사인도 받아왔다. 그리고 [마흔 살 사전]도 한 권 구입했다. 

아주 귀한 공연도 보고 참 좋았더랬다.



이 책 역시 시적이다. 

시인이 쓴 동화라 문장이 정말 예쁘다.

머그컵 '커커' 안에 10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추흰나비 '나나'이야기인 <마음도 날개처럼 딱>은 나나의 애벌레 시절이야기를 들려준다.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였는지를 읊었다.

커커는 나나의 어제를 잘 들어주고 자신 또한 원래 진흙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렇게나 뒤엉켜 밟히던 자신에 대해, 수없이 치대고 뭉개던 손길에 대해. 그리고 불가마 안에서의 두려움과 무서움에 대해. p26


진딧물 꽁무니나 빨고 사는 일개미 '일일이'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여 무작정 걷다가 커커를 발견한다. 

병정개미가 되고 싶었지만 먹이를 운반하는 일개미일 뿐이다.

일일 이에게 커커는 무슨 말을 해줄까?

커커는 딱히 말을 해주지 않고 들어주기만 해도 일일이는 마음이 풀린다. 

<눈가를 쓱쓱 닦고>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제목도 시의 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컵은 이야기를 담을 때 당사자의 회한까지 담나 보다. 

이 동화에 나오는 모든 생물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거나 살아나간다. 

그런 끈기가 어른에게 필요하다. 


외로움을 달래줄 이야기도 나온다. 

<외로워 외로워>는 거미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로움에 익숙해져 외롭지 않은지도 모르고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p102


어제도, 오늘도 혼자인 거미는 아무렇지도 않다. 

깡충거미 외로로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버리고 나왔다.

외로로는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커커에게 아무 말이든 쏟아낸다. 

달빛줄기를 타고 외로로는 외로움을 떨친다. 


대나무 숲 같은 커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둥글게 살아가는 것만이 잘 살아가는 걸까? 

대답 없는 커커에게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 주르륵 흘린다. 




두 편 모두 사고의 대전환을 일으키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시집을 매일 한 권씩 읽었다는 한강 시인의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동화와,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고 위로하는 박성우 시인의 철학적인 동화가 이 늦가을을 따뜻하게 해 준다. 


다시 읽어도 좋을, 언제나 읽어도 좋을 동화 두 편.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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