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카페 천천히
예전에 한 번 가보고 다시 들렀다.
'천천히 카페'는 파주 돌곶길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들어가는 길이 살짝 복잡하고 좁다. 주차장 자리는 넉넉한 편이라 점심시간을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https://brunch.co.kr/@noana/107
다시 들른 이유는 어제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닥을 하얗게 바꾼 눈을 보니 이 카페가 떠올랐다.
이곳이 좋았던 점은 조용한 음악(특히 오전 시간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 점), 카페지기 나름의 책 큐레이션이었다.
처음 방문한 날, 읽었던 동화 두 편을 잊지 못한다.
위 링크 속 브런치북에는 싣지 않았지만 김기정 작가의 [모두 잘 지내겠지?]와 홍민정 작가의 [모두 웃는 장례식]은 이곳에서 읽은 책이다.
해당 글은 다른 브런치북에 실었다.
https://brunch.co.kr/@noana/108
다시 방문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이 커다란 통창을 보고 싶었다.
2층에서 바라본 밖의 풍경은 정말 속 시원했다.
가만히 들리는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다 창밖을 보면 맑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2층에도 책들이 놓여 있다.
책과 제목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마음에 따라 이 제목도 달리 보인다.
단짠의 맛인 솔트캐러멜라테를 주문했다.
오늘 읽은 책은 신춘문예 2관왕 전지영 작가의 [타운하우스]라는 소설집이다.
이 책을 배경으로 찍은 집은 내가 살고 싶은 단독주택이다.
아이러니하게 책 표지에 타운하우스가 불나고 있다.
2023년 조선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포함하여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신춘문예가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젊은 작가인가 보다 했다. 실려 있는 단편들의 주인공이 중년여성이 대부분이어서 묘사를 어쩜 이리도 잘할까 생각했다.
실린 단편들 중 <쥐>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남편의 계급에 따라 아내의 위치도 달라지는 해군 관사가 배경이다.
바다로 떠난 남편 없이 홀로 육아를 하는 윤진의 일과를 읽으며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인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윤진이 허리를 굽힌 틈을 놓치지 않고 윤진의 목을 휘감았다. 윤진은 아이를 등에 매단 채 힘겹게 싱크대 문을 열었다. 아이가 허공에 흩날리는 가루를 만지려고 두 손을 번쩍 든 채 엉덩이를 들썩였다. p47
상상이 갔다. 아이를 업고 밀가루를 찾는 모습이.
윤진이 밀가루 봉지를 찾았을 때는 봉지가 뜯겨 있었다. 아이가 했다고 생각하는 윤진.
관사에는 쥐를 잡겠다며 화단에 큰 구멍을 뚫는 여자가 있다. 처음에는 피하던 다른 여자들도 맨 꼭대기 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인사를 한다. 그 층에는 높은 계급이 살고 있어서다.
쥐가 나온다는 설정이 너무 음침하고 암울했다.
컴컴한 뒷산에서 바람이 휙 불어왔다. 습기를 잔뜩 먹은 바람은 기분 나쁘게 윤진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바람을 피하려고 눈을 찡그렸다. p66
남편은 다른 나라로 파병 신청했다고 전한다.
요즘 사회를 보면 군대라는 조직이 폐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덮고 쉬쉬하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함께 생활하며 성글게 엮여 있던 전우애는 모두 사라지고 만 걸까?
바다에서 난 사고를 읽으며 힘들었다. 아마 떠올리기 싫은 사건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은 열네 명이나 구출한 건 열세 명이다. 한 명은 실종상태였지만 더는 찾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에서 '쥐'가 또 다른 선원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옛날이야기 중 쥐가 손톱을 먹어 똑같은 생김새로 나타나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맹점>은 안과의사 은애가 재복과 보험설계사와 합작으로 백내장 수술을 해준 후 수술비를 일정비율로 나누는 이야기다.
같은 전공의였던 남편은 약에 중독되어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계속 약을 구해달라는 남편을 뒤로하고 은애는 떠난다.
그 후 김인수라는 자가 나타나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마지막으로 수술한 환자의 보험서류가 통과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생선내장과 오물, 그리고 비린내가 가득한 시장을 걷던 은애는 고양이가 기습적으로 발을 핥자 놀라 달아난다.
한패로 보였던 재복이 말한다.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 p145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이 많은 걸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낱 욕심으로 끝날까?
이 소설집에 들어있는 단편들은 재미와 호기심을 다 잡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힘들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단편집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재미가 가미되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신예작가라고 하는데 작가의 장편이 더더욱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