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카페 크리미에
곧 비가 올 것 같다. 이제 정말 겨울이 곁에 다가왔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이제 정말 겨울이 곁에 다가왔다.
입구에 들어서서 카운터를 마주 보고 왼편에 노키즈존이 있다.
내가 이곳에 올 때는 항상 평일 오전이어서 (수요일 평일 미사를 드리므로)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냥 작업하기 좋은 책상들이 있고 좀 더 좁은 공간이라 담소를 나누기보단 조용히 책도 읽고 작업하기 좋은 장소다.
주문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서 하얀 냥이가 나타났다.
아이 이쁘다 하고 쳐다보는데 뒤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카페에는 고양이가 많다.
이 하얀 냥이들 말고도 카레냥이도 있었는데 이 날은 보지 못했다.
카페 주인장의 클래식한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 곳곳에 있다.
밖에도 참 예뻤는데 좀 더 따뜻할 때 오면 더 좋을 것 같고, 눈 내리는 겨울도 좋은 듯하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느낀다.
커다란 트리, 스노볼이 입구에서 나를 반겼다.
이번에 읽은 책은 인천 동네책방 '문학소매점'이라는 곳에서 구입한 책이다.
그 책방은 책방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만 있는데 직접 가보니 책장에 꽂힌 책들이 모두 내 취향이어서 반가웠다.
구입할 책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예전 책들을 많이 골랐다고. ㅋㅋ
읽은 책은 성해나 작가의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이라는 소설집이다.
낯선 작가와 낯선 제목이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과 <June.mp3>가 그 소설이다.
그리고 평론이 제일 끝에 실려 있다.
집에 불이 나 어머니는 조부에게 연락을 했다. 소방차보다 빨리 도착한 조부는 물을 끼얹고 불 속으로 들어가 가보인 도검을 챙겨 온다.
도대체 이 도검이 무엇이길래 화상입을 것을 알고도 화마를 향해 들어갔을까?
소설의 도입부가 굉장히 눈길을 끓었다.
가열된 검집을 맨손으로 잡아 생긴 상처였다. 병원에서 환부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는 와중에도 조부는 도검을 품에서 떼놓지 않았다. 그런 조부를 보며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p11
화자는 외탁을 했지만 조부는 자신을 빼다 박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화자는 조부를 따라나설 때마다 용돈도 생기고 배도 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영상학도였던 주인공은 종친회 어른들을 캠코더에 담는다.
우리 당조카가 약이 많이 올랐나 보네. p18
당숙이 자신보다 학력이 모자라다고 무시를 했던 조부는 그 말에 멱살을 잡는다.
캠코더에 전원이 들어와 있던 것을 확인한 화자는 녹화버튼을 끈다.
한마디 말 때문에 상대의 멱살을 잡는 조부의 몫인데. 이상하게 내 얼굴이 화끈댔다. 만일 그가 내 혈육이 아니라 모르는 어른이었다면. 트위터나 유튜브에서 시시대때로 맞닥뜨리는 사람들, 내 쪽에서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p19
가족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온다.
그 상황이 부끄러워도, 모면하고 싶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
자신보다 못한 당숙이 미덥지 못했지만 수술을 앞둔 그에게 자신의 퇴직금을 수술비의 절반에 보탰다.
가족이란 그런 것일까?
'진품명품'을 보던 조부는 가보인 도검에 대해 의뢰를 한다.
그곳에서 이 도검의 정체를 알게 되고 조부는 그 길로 도망 나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게 된다.
강건한 사람에게 조상은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일까?
고종이 하사한 도검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그것이 친일의 증거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을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허구이고, 소설임에도 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조부가 안타까웠다.
대쪽 같은 그에게 희망은 남아있지 않아 더 안쓰러웠다.
마침내 눈을 감게 된 날 그가 소리 없이 외친 '부끄럽다'가 내 귀에도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두 번째 소설인 <June.mp3>는 제목이 독특해 내용이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음악파일 '엠피삼', '엠피쓰리'를 뜻하는 게 맞으려나?
고민하며 책장을 넘겼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에 손을 긁는 여자 그레이스가 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엔 묵주를 굴리며 하느님 아버지를 찾으며 비행기의 공포를 견디려는 여자가 있다.
그레이스는 여자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왜 내 손을 만지냐고.
강박이 있는 그레이스가 정신 상담을 갔을 때 고슴도치 카드를 뽑아 든다.
가시가 안으로 자라는 고슴도치거든요. p55
자신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은 그레이스는 카드를 집어던지며 또 손등을 긁는다.
그녀가 한국에 들어왔지만 가족이 없다.
아빠는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한국에 와 들른 카페에서 밴쿠버 유학원에서 만난 이랑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를 발견한다.
유학원에서 갑자기 말을 걸었던 이랑. 그리고 둘은 같은 숙소에 배정된다.
이랑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애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다 가방에서 mp3을 꺼낸 뒤 이어폰을 꽂았다. 이랑은 계속해 말을 걸다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돌렸다. 어떤 곡도 흘러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나는 그대로 꽂고 있었다. p62
이랑은 포크나 나이프가 떨어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부르지 않았다.
'나대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는 문장을 방명록에 많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걸 본 후로 그걸 잊지 못한다.
이랑의 수업에 찾아간 그레이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랑이 의아하다.
손을 잡고 손을 보라는 이랑의 말에 그레이스는 손을 뿌리친다.
딱지가 않고 흉터가 많은 손등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다.
이렇게 손 안에도 각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잖아요. 나는 누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세히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들리고요. 그게 노래예요. p77
이후에 녹음을 하는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참혹하다.
어머니의 죽음 후 동생의 죽음.
그 원인으로 아버지는 살인자가 되고 그레이스는 한국을 떠난다.
이랑은 그레이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June'이 무슨 뜻일까 계속 의문을 품고 소설을 읽었다.
소설 끄트머리에 알게 된다.
소설과 찰떡인 제목이다.
이랑과 그레이스의 삶이 서글프지만 아름답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p97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보고 싶다.
깔끔한 소설 두 편.
2019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나왔던 소설.
아주 편안히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