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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Nov 19. 2024

비상문

수원 화성행궁 카페 91 Coffee



오랜만에 수원에서 조카와 함께 올라온 동생을 만났다. 내가 있는 곳과 동생이 있는 곳 중간쯤 만난 것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원시답게 길도 복잡하고 차도 많았다. 

경기도 남부 쪽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직 도착하지 않아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방탄소년단의 그림이 걸린 거리를 걷다 보니 작은 카페가 나왔다. 

작은 줄 알았던 카페는 3층까지 이어졌고 볼거리가 풍성한 카페였다. 




올라가는 계단이 많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넓은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다. 

바닥에 놓인 그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카페 주인의 독특한 감성이 느껴진다. 



덩굴이 가득한 포토존이 있어서 혼자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못 보겠지 하고 찍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CCTV가. ㅋㅋㅋ



커피도 맛있고 아이들이 시킨 아이스티와 스무디도 괜찮았다. 

더치커피를 구입해서 동생에게 줬더니 좋아했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서 그런지 더 깊은 맛이 났다.




이번에 읽은 책은 최진영 작가의 [비상문]이라는 정말 얇은 책이다. 

이 날 읽었을 때 ebook으로 읽어서 사진이 없다. 

다시 <문학소매점>이라는 서점에서 구입해 다시 사진을 찍었다. 



겉표지를 벗기니 또 다른 그림이 나온다. 

미메시스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단편 소설과 일러스트를 함께 소개하는 '테이크아웃' 시리즈다. 

그중 이 책은 10번째 책.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최진영 작가의 책이었고, 

얇아서다. 


내 동생 최신우는 3년 전에 열여덟 살이었고 지금도 열여덟 살이다. 

로 시작하는 소설은 그다음 문장이 '자살했다'라고 이어져 내용을 궁금하게 했다. 

동생을 잃고 혼자 남겨진 '나'는 계속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왜 그랬을까? 

그날 동생의 동선대로 움직여보면서 비상문을 연다. 

CCTV에 찍힌 동생을 잡고 싶다. 

몸을 돌려 그곳에서 꺼내고 싶다.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마다 비상문 표시가 나타났다. 

그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며 올라갔을까? 



동생이 죽은 뒤 안개가 걷히듯 친구들은 조용히 사라져 버렸고, 나는 사람과 친해지려 애쓰지 않았다. 특별한, 소중한, 친한, 아끼는,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p21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함께 하지 못한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최근 백부상을 당해 발인까지 함께 했다. 

이제 내 나이가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을 더 자주 갈 나이가 되었다. 

잦은 왕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났다. 고인에게 인사를 건네라고 할 때 나는 뒤에서 숨죽여 다른 친척분들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큰 고모가 울음을 터트리고 잘 가시라 할 때 나도 눈물이 흘렀다. 

나도 이런 데 실제로 잃은 사촌 오빠, 언니는 더 하겠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내 가족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거의 울지 않았다. 일단 모든 게 거짓말 같았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고, 슬픔은 죄책감에 짓눌려 기척도 내지 못했다. p23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더니 '나'는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에 웃음이 났다. 

'나'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례식에서 끝까지 곁을 지켜준 친구 '반지'는 간호사가 되었다.

모두 병원, 죽음, 병, 환자와 가까이 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는 의미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단 말이다. 남 말할 것 없다. 난 더 한심하니까. p36



사람이 죽은 이후에 남겨진 사람이 다시 그의 행적을 따라 걷는 것은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왜 여기선 멈췄을까? 


약국에 자주 오던 사람에 말을 건다. 동생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당황해하는 남자에게 사과를 한다. 


서두진 씨가 유리문을 열고 나가자 저물녘 햇살이 곧바로 내 눈을 찔렀다. 신우가 추락한 시간. 내내 흐리다가 갑자기 구름이 걷히던 날, 태양이 하루치 빛을 한꺼번에 쏟아 내던, 쏟아 내며 급히 허물어지던 그 시간. p42


'나'는 서두진 씨가 다시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을 한다. 다행히 보름 후 그는 약국에 다녀간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라는 인물이 위태로워 보였다. 

동생의 죽음 이후 이 사람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딱히 진찰을 받은 것이 없다. 

남겨진 가족들이 심리 상담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신중한 신우의 죽음을 두고 '나'는 괴롭다. 이 괴로움이 기만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동생의 자살을 이해할 수 있을까?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장이다. 

필사하고픈 맘을 부르는 문장.


수치심. 아는 단어인데도 모르는 단어 같았다. 신우와 수치심을 나란히 두고 신우를 부르듯 수치심을 불렀다. 수치심은 아름다운 단어. 신우와 어울리지만 신우와 만나서는 안 되는 단어. p59


모든 것이 화자와는 달랐던 동생이, 여름나무 같은 신우가 세상을 등졌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추락을 막을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같이 뛰어내렸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73쪽에서 끝이 난다. 

뒤에 실린 작가 인터뷰를 읽으며 이 소설을 곱씹었다.


삶과 죽음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중얼거리면서 시스템 종료 대신 다시 시작을 누르는 순간들. 매일 생각한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p77


[비상문]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이다. 

이 소설이 나온 건 2018년이다. 

이제야 이 소설을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소설이 좋다. 

그 시대를 반영하는 소설보다. 

겉표지 안에 들어있는 화살표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마지막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를 읽어도 알 수 없었다. 

얕은 궁금증을 자아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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