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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Aug 27. 2023

30년 전 만화를 좋아하던 소녀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작가를 만나다

"이 분단 맨 뒷 줄 앞에 너! 책상 서랍에 있는 거 갖고 나와."

갑작스러운 영어 선생님의 호령에 친구는 깜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쭈뼛거리며 책상 서랍 속에 꺼낸 것은 만화책이었다.

'사랑의 아테네'라는 만화책.

만화는 신문에 실린 '꺼벙이'같은 종류의 코믹만 보다가 친구 손에 들린 만화책의 그림을 본 순간 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마구 떠올랐다.

친구는 그 책을 압수당했고 수업이 다 끝나고 그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받을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다른 반 친구들은 만화책을 가지고 와 선생님께 뺏기면 그냥 구입해서 대여점에 반납하거나 만화책값을 지불해야 했다. 영어 선생님은 그에 비해 선녀였다.


그날 나는 하교하는 길에 집 근처 책 대여점에 들렀다.

가입비를 내고 회원가입을 하면 적은 금액을 내고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

요즘처럼 도서관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책을 좋아하던 나에게 봄비 같은 공간이었다.

매번 소설류의 책만 빌려보다 만화책을 훑어보았다.

친구가 갖고 왔던 만화책을 찾아보니 비슷한 그림체로 여러 권 꽂혀 있었다. 그중 한 권을 뽑아 책장을 스르륵 넘기며 훑어보니 꽤 재미있어 보인다. 잠시 서서 그 만화책을 다 읽었다. 

눈치가 보여 2,3권을 카운터에 내고 돈을 지불했다. 딱 일주일간의 대여기간이 이 책을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간.


꽤 많은 여성 만화가들이 있었다. 그중 예쁜 그림체거나 귀엽거나 아니면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거나. 그때 유행했던 만화잡지들 윙크, 르네상스에 본 작가들의 작품들을 대여점에서 빌려 보기도 하고. 

신일숙, 이미라, 강격옥, 황미나, 김진, 김숙 정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봤고 지금도 만화카페에 가면 이 작가들의 작품들이 책장에 나열되어 있다. 지금까지도 그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너무 감격스럽다.


그 감격스러움을 한 번 더 몸소 겪었는데 작년 반년 동안 근무를 했던 공공기관에서 웹툰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때 그 많은 작가들 중 한 명인 신일숙 작가를 만났다. 실제로 얼굴을 보게 된 것도 신기했고 그녀에게서 어떤 일을 지금 시작해도 좋으니 도전해 보라는 격려를 받았다. 용기를 얻고 나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나이가 많은 건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했는데요.'라고 말을 해준 작가가 너무 넘사벽이라 그 말에 동의를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계속해서 가진 않고 잠깐 모르는 길로 한 번 들어와 봤다. 그랬더니 또 길이 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가다가 잠시 한 눈을 팔아 다른 길을 들어도 어차피 목적지는 도달하게 되어 있듯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구경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듯하다.

얼마나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가던 길만 가고 먹던 것만 먹던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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