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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Sep 18. 2023

다섯째 날

북한산

산이 나를 부른다. 그래서 많이 가고 싶었다.

갑자기? 는 아니겠지만 세상이 흉흉해진 덕분에 혼자 등산을 하는 것은 잠시 마음을 접어둬야 했다. 홀로 운동을 하러 간 여성은 그동안 숨겨졌던 공격성에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다. 기사가 뜬 후로 내게 한 번씩 문자나 전화가 왔다. 절대 혼자 산에 가지 마라고.

네네.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예전에 같이 등산을 갔던 언니와 함께 산에 올랐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언니가 가본 곳으로 정했다. 아무래도 아는 길이면 길을 잃을 염려가 줄어드니까.

#북한산 은 여러 경로가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르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제일 낮은 원효봉으로 선택하고 걸었다.


입구에 와서 언니는 내게 스틱을 빌려줬다.

와, 이곳은 스틱이 없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꼭 스틱을 구입하기로 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오르기 시작했다. 꽤 경사가 가팔라 나는 오르는 동안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다. 정상에 올라서야 휴대폰을 꺼낼 수 있었는데 다음엔 꼭 앞으로 멜 수 있는 작은 가방을 챙겨 오기로.

덥지 않았다. 그늘이 없었다면 땡볕에 힘들었겠지만.

다른 둘레길과는 다르게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막을 오르면 또 다른 오르막이 있다. 괜찮았다. 혼자가 아닌 둘이 같이 걸어가는 거라 무섭지도 않고 다리만 아플 뿐. 참을 만했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언니는 잠시 쉬자고 했다. 나는 숨이 턱 차올랐다.

언니는 아직 시작한 게 아니라고 했다.

잉? 이제껏 올라온 이 길은?

땀이 잘 나지 않는 나인데 땀이 얼굴을 덮었다. 아이코, 수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산을 오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자잘한 준비물들. 그래도 물은 챙겼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갈림길을 맞이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어디로 향할지 모를 때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길만 갈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이번 산행은 갈림길 표시판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이라 그렇겠지?

아직 정상에 오르기 전 바위를 네 발로 기어올라갔다. 아, 네 발로 기어올라갔다기보다는 로프줄이 없으면 오를 수 없는 바위들. 그 바위를 어쨌든 나는 넘고 또 넘었다.

언니가 없었으면 휴대폰에 산 사진만 가득 담아갔을 텐데, 덕분에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진들이 꽤 있었다. 살을 더 빼보겠다.

좀 더 목을 길게 내뺀 채로 사진을 찍어보리라.

상운사라는 절을 알리는 표식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돌에 새기는 이 행위가 자연상태를 해하는 걸까, 아니면 표지판 설치를 위해 땅을 파는 것이 자연을 해하는 걸까?

원효봉 정상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고양이들 위로 강아지가 한 마리 나타났다. 이 녀석들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은 채로 경계하고 있었다.

강아지는 우리가 먹는 간식을 보고 내려오려고 했으나 고양이들의 하악소리에 주춤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는 두 마리라 쪽수에 밀린 걸까?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은 청량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티 없이 맑은 하늘.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보고도 싶었으나 그건 안된다고 하니.

요즘 산에서 야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데 금지된 지 꽤 되었다. 그래도 꼭 올라가며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가 한 둘 있었다.

저 넓디넓은 바위 너머로 보이는 짙은 청록의 수풀림, 그 위 하늘빛 경계, 사람들이 사는 곳과 선을 긋듯 번져 보이는 저 너머 마을들.

푸르름 속에 숨어있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알리는 바위 봉우리들이 빛을 받지 못하는 부분은 허옇게 맨 살이 드러나 보인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처음 산을 오르기 위한 길이 나왔다.

조금 더 내려와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식당가로 올라왔다. 밥이 안 들어갈 것 같아서 밀면을 먹기로 했다.

비빔과 물을 하나씩 주문하니 콩밀면을 서비스로 나와 맛나게 맛보고.

북한산의 또 다른 인스타 장소인 북한산 스타벅스에 잠시 들려 커피 한 잔을 했다.

전망이 좋아 보이는 창가 자리는 진작에 다 찼다.

우리는 훨씬 좋은 전망을 보고 왔으니 양보하겠소.

다음 등산 때는 손수건, 스틱 준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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