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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Nov 15. 2023

층간소음에 대처하는 법

우퍼 아님, 메트로놈으로 둔갑하기

윗 층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온 후 두통이 생겼다.


그전에 살던 할아버지 내외분은 오후 10시 전에 모든 게 끝났다. 발망치가 있긴 했어도 많이 움직이진 않으셔서 괜찮았다.

가끔 계단 창가에서 담배를 피시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곧 관리사무소에서 계단 흡연 금지 방송이 있은 후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이사 가는 날, 이사 준비를 하길래 어디로 가시냐 했더니 바로 옆 호로 가신다고 했다. 나름 인사도 잘 받아주셨는데 아쉽긴 했다.

어떤 분들이 이사올까 궁금했다.


언제 이사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위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사다리차가 온 걸 못 봤는데 엘리베이터로 이사를 했던 것일까?

조금 뒤 알아챘다.


아이가 있구나.

우리 집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그 점은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여러 명이 있는 것 같았다.

주방에서 거실까지 다다다다다.


욕실 문을 열어두면 엄마가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거나, 동화를 읽어주거나 하는 게 다 들렸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그렇게 들렸다.

아빠가 양치를 하다가 혀를 너무 닦았나 보다. 구역질 소리도 들린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나고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둘째가 하는 말, "아이가 의자에서 떨어졌나 봐요."


할아버지가 사실 때는 안 들렸던 소리들이 다 들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서로 인사를 했다.

부부와 유치원을 다니는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파트 바닥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다 들린다.

아이가 뛰는 건 오히려 나을 정도.

남편인지, 아내인지 모르겠지만 동선을 다 알 정도로 발망치가 심했다.

쿵쿵 울리는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 keithmisner, 출처 Unsplash


위로 쫓아 올라갈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 집이 생각보다 조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커뮤니티에서는 우퍼 스피커를 설치하라는 내용이 많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또 검색을 해서 구입하고 하는 게 귀찮기도 했고 그 방법을 잘못 쓰면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고 하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유튜브로 '카페에서 듣는 피아노'를 틀었다.

오, 신세계.

아이들은 자연스레 클래식에 노출되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흔한 남매 만화책과 마법천자문 같은.

그리고 나는 자판을 두드리며 카페에서 일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꽤 괜찮았다.


발망치가 메트로놈으로 둔갑하는 마법.


조용히 밀크티 한 잔 따르고는 마시며 계속해서 글을 썼다.


동생이 보내준 쿠폰으로 딜리버리


한 명이 두 명이 되어 발망치 소리가 두 배가 되면 약간 신나는 피아노 음악으로 바꿨다.

그리고 소리를 살짝 더 키웠다.

이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갈는지 모르겠다. 소리를 더 키우면 쿵쿵 걷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면 다시 소리를 줄였다.


지금도 여전히 발 망치는 박자를 맞추며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아직 아이가 유치원에서 안 돌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다다다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말 아이는 뛰어도 괜찮은데.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얌전한 애들은 아니어서 아래층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신 걸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아래층 아저씨가 처음 올라온 날 다들 얼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집 아이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아이라고 하기엔 많이 큰 아이를.

몇 학년이냐고 하니 고3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어머, 정말 미안해. 진짜 미안하다. 조심할게. ㅠㅠ"

"괜찮아요. :)"


그리고 정말 조심해서 걸었다. 실내화는 그전부터 신고 있었지만 신었다, 벗었다 했었기에 무조건 신었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_-+ 이 표정을 발사했다.


그리고 수능 전 날 차랑 초콜릿이랑 포장해서 아랫집 문고리에 걸어뒀다.

다음 날 출근을 하려고 나가는데 우리집 문에 뭐가 걸려 있어서 보니 아랫집이다.


© smakoladka, 출처 Unsplash





- 별로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올라갔네요. 갱년기라 조금 예민한가 봐요. 보내주신 차와 초콜릿은 아이가 좋아하면서 가져갔어요. 감사합니다. 아이가 수능 친다고 많이 받아서 보냅니다. -


© thefatdash, 출처 Unsplash






정성스러운 손 글씨로 쓴 편지와 초콜릿 상자가 들어있었다.

와, 이런 분도 있구나.

어쩌면 이렇게 아랫집에서 배려를 해주신 덕분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았다.











나도 윗 집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될 것 같다.


아니, 받더라도 절대 올라가지 말아야지.

사실, 슬리퍼를 사서 올라갈까 생각했지.


피아노 선율에 귀를 열고 메토로놈에 머리를 까딱이며 오늘 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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