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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Jan 15. 2024

공간학카페

오늘 읽은 책 : 어떤 고백 - 김리리

12월 마지막날, 교보문고에 들렀다.

지역사람들이 다 이곳에 몰려든 것일까? 어떤 코너에 가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계산을 하러 간 곳의 줄은 커다란 구덩이가 똬리를 튼 듯 굉장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잠시 뒤에 계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책을 들고 앉을 곳을 찾았다.


공간학 카페라는 이곳은 책을 읽으면서 차도 마실 수 있었다. 교보문고 안의 유일한 카페였다.

아이는 딸기요구르트 스무디를, 나는 항상 시키는 라테를 주문하고 책을 펼쳤다.


처음 읽었던 책은 최상희의 [카이의 선택]이라는 얇디얇은 책이다.

얇아서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집었는데 책 두께에 비해 내용은 묵직했다.

남들과 다른 초능력을 가진 자매, 그리고 헤어짐.

그 초능력을 가진 이들은 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특별관리대상이 된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오히려 차별받고 괴로워한다.


선택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 능력을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 능력이 주는 또 다른 혜택도 있다.

그게 카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노력해서 얻은 순수 능력일까?

후자라면 정말 억울하겠지만 전자라도 그걸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닐 테니까.




두 번째로 읽은 책은 동화작가로 유명한 김리리의 [어떤 고백]이라는 청소년 소설이다.

동화작가로는 굉장히 유명한데 비해 그녀의 소설은 생소했다.

처음 나오는 단편을 읽을 때 문체나 내용이 너무 올드해 같은 작가가 맞을까 하는 생각에 책정보를 보니 꽤 오래전에 14년 전에 출간된 책을 개정판으로 낸 책이었다.

그 시점으로 이해하고 읽으니 조금 내용흡입이 빨라졌다.


그때 그 시절, 학창 시절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학업고민, 첫 이성친구, 가정환경, 교우관계.

초등학생을 지나 청소년기에 다다르면 억압된 내면을 폭발시킨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할 방법이 없다.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그때 그 시절.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도 없고, 해결방안도 없을 것만 같은 블랙홀에 빠지는 기분.

다들 느껴봤을 것이다.

조용히 지난 사춘기는 나이 들어서 문제가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약간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지금 따라붙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수>라는 단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반가워하지 않는 아이의 등장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자해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아이다.

어느 날, 자신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반장에게 다가가 그 자리에 있던 우유팩을 칼로 찢었다.

팩에서 흘러나온 우유는 책상을 가득 메우고 교실에서 소란이 일었다.

결국 그 아이는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다.

목사의 장남으로 동생이 3명 있던 그 아이는 반에서 유일하게 휴대폰이 없던 아이였다.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들려오는 얘기로 크고 작은 억압들이 아이 주변에 있었던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이 단편에서도 자해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하고 그 상처가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만난 그 아이는 목공소에서 작품을 만든다.

이 소설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살아줘서 고마웠고, 다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규의 [네 나이에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라는 에세이는 청소년 코너에 있던 책이다.

이미 나는 성인이 되었고, 부모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한 번씩 물어본다.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겠느냐고.

나는 중2로 돌아가고 싶다. 말랑말랑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또 누군가 물어본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내 생애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20대여서,

정말 몸을 혹사시키면서 나를 발전시키려고 애를 쓰던 시기여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그때여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들려온 친구의 소식으로 내가 다니던 여중은 사라졌다고 한다.

다시 돌아갈 중학교는 없어 아쉽긴 하지만 그 시절이 가장 그립다.


지금 우리 아이 나이에 이 모든 것들을 알았다면 정말 인생이 달라졌을까?

적어도 내가 간 길에 후회가 남았던 부분을 아이가 걷게 하고 싶진 않다.


아이는 재밌게 읽은 애니메이션의 소설판을 읽기 시작했다.

무게라는 별명을 얻는 주인공. (무한게이지 수수께끼 인간이라는 뜻)

보통의 아이라면 고백 후 차이면 마음을 접거나 상대를 원망한다. 하지만 책 속의 미요는 고백을 반복한다.

개구리왕눈이의 가사가 생각난다.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 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출처] 개구리 왕눈이 노래 - 개구리 소년 듣기/가사/영상|작성자 바람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계산 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똬리 끝으로 갔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줄어들지 않았고 더 늘어 있었다.

키오스크로 계산이 가능해 그 줄에 섰다.

직원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제할 수 있었다.

꽤 많이 대기를 했지만 무사히 계산을 했다.


새로운 결심을 갖고 서점에 들른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 한 사람인 나.

좋은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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