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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Jan 22. 2024

마리커피 1986

오늘 읽은 책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첫째의 예비소집일이었다.

방학 내내 늦잠을 자다 오늘만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애 최초 교복을 입게 될 텐데 각종 안내문을 가져왔다.

마침 남편의 휴가, 둘째의 학원 방학도 겹쳐 무얼 해볼까 고민을 했다.

바다를 제일 보러 가고 싶었지만 결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또는 남편이 늙으면서(!) 의견을 맞추기 힘들어졌다.


카페를 가겠다고 맥북까지 챙겨간 이상 나는 기어코 카페에 들렀다.

뭐라도 쓰고 가려고.

오늘 있을 논문세미나를 준비하려고.

집 근처에 있어 작업을 하고 나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2층에도 자리가 있다. 한번 올라갔다가 엄숙함에 고개를 숙이고 맘 편하게 1층에서 작업을 했다.



들어올 때는 한 사람만 있었다.

자리를 잡으니 사람들이 서서히 밀려든다.

통화를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도 있다.

내가 이 카페에 들어온 지 40분이 지난 지금까지 통화를 끝내지 않는 남자.

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듣고 싶지 않은데 워낙 작은 카페다 보니 정말 적나라하게 잘 들린다.

자신을 대표로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상대와 이야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잘 해결하시기를.


이 카페에는 종종 들렀었다.

딸과 둘이 나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이는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아무래도 주인이 바뀐 것 같다. 주인에 따라 커피 맛도 변했다.

시간대가 변경된 걸까?

올 때마다 보이던 강아지 짱구가 등장했다.

이번 사장님 역시 짱구를 반갑게 맞았다.


카페에 놓여 있던 그림


저녁에 논문세미나가 있다.

그동안 소설론에 대한 세미나만 참여를 해서 큰 부담은 없었는데 이번엔 준비가 필요했다.

지도교수님께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그동안 읽은 책, 또는 논문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셨다.

이번에 논문 발표를 할 원우들의 내용도 공유하고.


논문조사표에 대한 양식이 없어서 내가 필요한 항목들을 추가해서 넣는 것으로 했다.

한글로 작업을 하다 맥북으로 하려니 확실히 불편하다.

웹버전(한컴독스)에 올린 내용만 복사해서 페이지(pages)로 옮겼다.

한글을 웹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합니다. 관계자분들.)


대략 표를 조정하니 제법 보기 편하게 되었다.

이 표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야겠다.



이번에 읽은 책은 [연인]으로 유명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이란 책이다.

책목이 [글]인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글에 대한 내용임은 틀림없다.


첫 책들을 쓰던 그때의 고독을 나는 늘 간직했다. 그 고독은 늘 나와 함께 다녔다. 어디를 가든 글쓰기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고독해야 한다. 저자의 고독, 글의 고독, 자신을 둘러싼 침묵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얇디얇은 이 책에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경건함이 엿보인다.

나도 글을 쓰고 있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펼쳐진 책은 또한 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혼자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남들이 소재를 던져줄지언정, 쓰는 것은 오로지 작가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외롭다고 하는 것일 테다.


저자는 파리의 죽음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 죽음을 문학으로 옮겼다.

표현들이 굉장히 진지해서 웃으며 읽은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글쓰기는 미지의 존재다. 쓰기 전에는 쓰게 될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온전히 명료한 정신이다.


글쓰기라는 영역이 누군가에는 어렵고 누군가에는 쉼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한정된 시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으면 그럴싸한 글들이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글쓰기가 편하다고 해도 쉽게만 써 내려간 글들은 시간이 흐른 후 읽었을 때 간절함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로마는 사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마는 자신의 힘을 알린 거예요.
사유는 다른 곳에서,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졌어요.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고요.
로마는 전쟁을 했고, 그 사유를 훔쳐 오고, 공표했을 뿐이에요.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지인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텔에 묵었다. 혼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할 때 집중이 잘된다고 모텔에 묵었다.

벽으로 넘어오는 소음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홀로 유럽을 여행했다고 했다. 그리고 묵은 숙소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작은 공간에 침대, 창문 아래 작은 책상. 그게 전부였다. 그 공간에서 그는 며칠을 묵었다. 그 정도의 공간이 내가 사유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나도 홀로 일본에 다녀왔을 때의 공간 역시 넓지 않았다. 침대에서 그날 하루의 기록을 남겼다. 그거면 충분했다. 넓은 공간은 사치일 뿐이다.



이 책의 원제는 '쓰다(ecrire)'이다.

죽음을 앞둔 작가에게 글이 무엇인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알려준다.

이제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괜찮은 글을 많이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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