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설 Aug 22. 2022

시한부 연애_사랑인 척 연기하기

여덟 번째 단짠레터

얼마 전 <키스 식스 센스>라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키스를 통해 미래를 보는 여자와 오감이 뛰어나게 발달한 남자의 로맨스 이야기입니다. 저는 메인 커플보다 서브 커플에 눈길이 가더군요. 단 일주일 동안 진하게 연애하고, 정확히 7일째 되는 날 헤어지거든요. 끝이 정해진 연애, 왜인지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유통 기한은 보통 2년이라고 하죠. 2년이 지나면 사랑의 호르몬이 점점 줄어들어 불탔던 마음이 사그라지게 되고, 권태로움에 빠져 결국 헤어지게 되는. 저는 이 호르몬의 영향을 정확히 받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2년을 넘겨본 적이 없어서요. 드라마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2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죠. 렇다고 긴 시간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오래 만나고 싶었거든요. 두터운 믿음 하에 안정적이고 건강한 연애 같은 거요. 당연히 오래 만난다고 해서 모든 연애가 안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큰 힘이 있어서 둘 사이의 신뢰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작용을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호르몬의 장난인지 신기하게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끝나고 마니, 이 정도면 제 연애 세포에 정말 유통기한이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연인을 사랑한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연기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로 '나 정말 이 사람 사랑하는 걸까?'란 질문을 수없이 던졌습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저에게는 뭔가 대단하고, 숭고하게 다가왔거든요. 그래서 사랑한다는 표현도 잘 못합니다. 양심에 찔려서. 더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역할 놀이를 했던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연애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애인이라는 역할에 충실히 임하다가 정해진 엔딩을 맞이하고 마는.


저는 약간의 나르시시스트적인 기질이 있어서 가족보다, 애인보다 제가 항상 1순위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뽑자면 제 자신이 되겠네요. 그래서일까요?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말이죠. 대신 감정이 사그라들어 불씨마저 남아있지 않는 순간까지 최대한 연료를 불태웁니다. 그 순간만큼은 저도 집중이란 걸 합니다.


어쩌면 그게 사랑이었는데 제가 쓸데없는 환상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내가 1순위라서? 감정 소모를 예방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자꾸 발동하는 것일지도요. 이유가 뭐든 연애는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을 알아가고, 마음을 나눈다는 게 점점 힘든 것 같습니다.


아름다웠던 방콕의 밤


유독 그런 밤이 있습니다. 지금의 제 삶에 만족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할 때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기 싫고, 애인과 깊은 친밀감을 나누고 싶지만, 굳이 애쓰고 싶지 않고. 혼자가 편한 걸 알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관심 가져 주길 바라는. 오늘이 그런 밤이네요. 알다가도 모를 이 감정에 취해 사랑이 뭘까 고민하며 제 지난 연애를 되짚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연애를 할 겁니다. 2년이라는 장벽을 깨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때는 사랑의 감정을 확실히 알면 좋겠어요. 순수하게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저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을 추앙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